독일의 시성(詩聖)이라고 불리우는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이런 격언을 남겼습니다. “인간을 벌할 수도 사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으면 안된다.” 이는 법(law)과 관련한 격언으로, 법이 처벌만을 위한 것도, 사면만을 위한 것도 아니라, 오직 인간존중의 따뜻하고 열린 시선으로 항시 접근해야 한다는 진리를 망각하지 않게 해 주는 격언입니다. 그러니 처벌과 혐오가 법의 궁극적 목적이 아니라는 점이지요. 그런 맥락의 연장선에서 교회 내에 존재하는 교회법도 같은 신학과 영성을 지닙니다. 교회법은 교회 구성원들의 처벌만을 위한 것도, 예방적인 차원이나 교정적인 차원만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법은 목적률(Teleological Principle), 곧 본디 창조되고 제정된 본질에 충실하도록 계도하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법은 곧 사목적이며, 사목적인 것은 교회법과 상충되지 않아야 마땅한 것입니다. 요즘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깝고 대단히 아쉬운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법 학자의 수호성인이신 스페인 페냐포르트(Penafort)의 성 라이문도 사제께서는 다시금 주목해야 하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이분이 교회법의 기초를 세우신 교회법 대학자 성인사제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디 도미니코회(설교자회)의 세 번째 총장으로 재임하셨고, 수많은 저서를 지으셨음에도 항시 겸손한 모습을 간직하고 계셨습니다. 이 라이문도 성인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우리가 잘 아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 성 보나벤투라, 성 대 알베르토 등이십니다. 라이문도 성인께서 교회법의 대가로서 기초를 닦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의 이름 속에 담겨진 영성과 삶을 보면서 지금 이 시대의 혼란을 다시금 분별할 절대적 필요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분의 이름 라이문도는 영어로는 ‘Raymond(레이몬드)’입니다. 고대 게르만어로는 ‘Raginmund(라긴문트)’라고 했으면, 이태리어로는 ‘Raimondo(라이몬도)’라고 부릅니다. 스페인어와 포르투칼어로는 ‘Raimundo(라이문도), Ramon(라몬)’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본 어원인 고대 게르만어를 분해해서 분석하면 이렇습니다. ‘Ragin(라긴 or 라진)’은 ‘advice, decision’이란 뜻이고, ‘Mund(문드 or 문트)’는 ‘protector’이란 뜻입니다. 그러니 레이몬드, 라이문도는 한 마디로 ‘The Protector of Advice and Decision’입니다. 곧,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합당한 조언을 줄 수 있는 진리의 수호자”라는 의미가 라이문도라는 이름에 내포된 어원적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라이문도 성인은 47세에 도미니코회(설교자회)에 입회하셔서 1238년에 총장이 되셨습니다. 그러면서 다시금 도미니코회 수도회 회헌을 재정비하셨는데, 이 회헌이 1914년까지 도미니코회의 근간이 되었을 정도로 아주 탁월하였던 것입니다. 교황청 내사원에서 활동하셨고, 고해성사의 여러 지침을 주는 “상황윤리전서(Summa Causum)”를 집필하셨습니다. 그래서 젊은 수사였던 성 토마스 아퀴나스를 설득하여 “이단자를 거슬러(Summa contra Gentiles)”를 집필토록 한 “진리의 수호자”가 바로 라이문도 성인이셨습니다. 거의 100세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를 위한 생애를 사셨던 라이문도 성인께서는 1275년 1월 6일에 선종하셨습니다. 1601년 교황 클레멘스 8세에 의해 시성되셨고, 1969년 전례력 개혁을 하면서 축일을 1월 7일로 옮겨 지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항시 주님께서는 교회가 여러 가지 혼란과 분열과 가치 상대화로 인해 몰락할 처지였을 때에, 합당한 지적, 영적 수호자를 파견하여 주셨습니다. 라이문도 성인처럼 진리의 수호자가 되어야 할 때는 그 때만이 아니라 늘 그렇지만, 지금 우리 한국가톨릭교회도 더욱 그렇습니다. 라이문도 성인처럼 이 시대에 백색순교자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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