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씨시 성녀 글라라 대성당 지하에 모셔진 글라라 성녀 유해 |
프란치스코도 그러했듯이, 글라라라는 이름도 라틴어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12~13세기 중세의 인물이었기 때문에, 구약의 히브리어나 신약의 그리스어가 아닌 대중적인 라틴어로부터 이름을 따왔던 것입니다. 라틴어로 보면, 이 글라라는 철자가 Clara입니다. 이는 남성형용사 Clarus의 여성형입니다. 그래서 Clara입니다. 다시 이 형용사의 뜻을 살펴보면, 'transparent, clear"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라틴어 Clara가 스페인어로 와서는 그대로 Clara라고 표기합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이 계란의 흰자 부분을 두고 'clara'라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투명함이 백색으로도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태리어로는 Chiara (끼아라), 프랑스어로는 Clare (끌레르), 영어로 Clare (클레어)로 표기하고 발음합니다. 독일어로는 Klara라고 하고, 참고로 독일어에서는 '설명'이라는 명사가 Erklärung이라고 하여서, 상대를 두고 명료하게 만드는 것을 두고 '설명'이라고 정의하는 독일어식 뉘앙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현대의 국문표준법상, 우리나라의 첫 음절은 ㅋ, ㅌ, ㅍ 등은 그보다 약한 소리인 ㄱ, ㄷ, ㅂ로 표기하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클라라'가 되겠지만, 한국표준법에 따라서 '글라라'가 됩니다. 같은 경우로 Petrus, Paulus '페트루스' '파울루스'가 라틴어로 올바른 표기이지만, 우리는 '베드로' '바오로'로 표기하고 부르고 있는 것도 동일한 원칙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투명과 순백을 가진 여인의 이름인 '글라라'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일까요? 우선 '순백의 믿음'을 지녀야합니다. 글라라 성녀는 십자군 전쟁 시기에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래서 오스만 투르크(이슬람) 사람들이 수녀원을 향해 처들어올 때에 자매들의 요청을 받습니다. 우리가 피신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글라라는 '순백의 믿음'을 지녔습니다. 다시 말해,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주님께서 보호해주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순백'의 성체가 모셔진 성광을 들고 창밖을 향해서, 처들어오던 이슬람 사람들을 향해 성광을 보였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자기들의 걸음을 멈추고 물러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글라라 성녀를 두고 '순백의 믿음, 순백의 성체기적'을 가진 성녀라고 합니다. 오늘날도 성녀를 표현할 때에 성광을 자주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글라라수도원에서 성체공경신심은 가장 첫머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또한 '투명한 지성'을 갖고 신앙을 제대로 이해하였다는 점입니다. 글라라는 원래가 귀족의 딸로서, 아주 고매한 지성을 지니고 있었던 여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프란치스코를 만나서, 밤에 자기집을 몰래 나와서 프란치스코를 찾아가 삭발례를 거치고, 프란치스코의 첫번째 여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후 항상 신앙 속에서 우애를 나눴습니다. 혹자는 둘 사이를 두고 흔히 드라마에서 그리는 로맨스가 있었지 않겠느냐고 하는데, 거기에 포커스를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설령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문제의 본질이요 핵심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을 항상 곁에서 이해하고 해석하다보니,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을 그 누구보다도 투명하게, 올바르게 이해한 '지성'이었다고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리스도교 여인들 가운데 완덕을 살아낸 성녀로 시성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글라라라는 이름에는, 주님의 도움으로 신앙을 '투명하게 이해하는 지성'을 갖추는 길로 걸어가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용감하고 지혜로운 여인'이라는 길이 떠오릅니다. 교황에게까지도 굽히지 않으면서, 원초에 프란치스코가 원했던 복음정신의 근본적 실천을 위해 용감하면서도 지혜롭게 교황청과 맞섰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자신의 친필로 작성한 '가난의 특전' 회칙을 들고, 교황청의 인준을 받은 후에 선종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두고 '용감하면서도 지혜로운 믿음의 여인'으로 보는 것은 올바른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글라라라는 이름 속에는 '순수한 믿음, 투명한 갈망,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믿음, 희망, 사랑'이 다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이름을 자신의 세례명으로 삼는 자매님이라면, 언제나 신앙 속에서 굳건하게, 용기있게, 사랑스럽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길을 걷도록 주님께 도움을 청해야 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라틴어 Clara가 스페인어로 와서는 그대로 Clara라고 표기합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이 계란의 흰자 부분을 두고 'clara'라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투명함이 백색으로도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태리어로는 Chiara (끼아라), 프랑스어로는 Clare (끌레르), 영어로 Clare (클레어)로 표기하고 발음합니다. 독일어로는 Klara라고 하고, 참고로 독일어에서는 '설명'이라는 명사가 Erklärung이라고 하여서, 상대를 두고 명료하게 만드는 것을 두고 '설명'이라고 정의하는 독일어식 뉘앙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현대의 국문표준법상, 우리나라의 첫 음절은 ㅋ, ㅌ, ㅍ 등은 그보다 약한 소리인 ㄱ, ㄷ, ㅂ로 표기하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클라라'가 되겠지만, 한국표준법에 따라서 '글라라'가 됩니다. 같은 경우로 Petrus, Paulus '페트루스' '파울루스'가 라틴어로 올바른 표기이지만, 우리는 '베드로' '바오로'로 표기하고 부르고 있는 것도 동일한 원칙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투명과 순백을 가진 여인의 이름인 '글라라'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일까요? 우선 '순백의 믿음'을 지녀야합니다. 글라라 성녀는 십자군 전쟁 시기에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래서 오스만 투르크(이슬람) 사람들이 수녀원을 향해 처들어올 때에 자매들의 요청을 받습니다. 우리가 피신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글라라는 '순백의 믿음'을 지녔습니다. 다시 말해,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주님께서 보호해주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순백'의 성체가 모셔진 성광을 들고 창밖을 향해서, 처들어오던 이슬람 사람들을 향해 성광을 보였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자기들의 걸음을 멈추고 물러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글라라 성녀를 두고 '순백의 믿음, 순백의 성체기적'을 가진 성녀라고 합니다. 오늘날도 성녀를 표현할 때에 성광을 자주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글라라수도원에서 성체공경신심은 가장 첫머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또한 '투명한 지성'을 갖고 신앙을 제대로 이해하였다는 점입니다. 글라라는 원래가 귀족의 딸로서, 아주 고매한 지성을 지니고 있었던 여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프란치스코를 만나서, 밤에 자기집을 몰래 나와서 프란치스코를 찾아가 삭발례를 거치고, 프란치스코의 첫번째 여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후 항상 신앙 속에서 우애를 나눴습니다. 혹자는 둘 사이를 두고 흔히 드라마에서 그리는 로맨스가 있었지 않겠느냐고 하는데, 거기에 포커스를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설령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문제의 본질이요 핵심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을 항상 곁에서 이해하고 해석하다보니,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을 그 누구보다도 투명하게, 올바르게 이해한 '지성'이었다고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리스도교 여인들 가운데 완덕을 살아낸 성녀로 시성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글라라라는 이름에는, 주님의 도움으로 신앙을 '투명하게 이해하는 지성'을 갖추는 길로 걸어가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용감하고 지혜로운 여인'이라는 길이 떠오릅니다. 교황에게까지도 굽히지 않으면서, 원초에 프란치스코가 원했던 복음정신의 근본적 실천을 위해 용감하면서도 지혜롭게 교황청과 맞섰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자신의 친필로 작성한 '가난의 특전' 회칙을 들고, 교황청의 인준을 받은 후에 선종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두고 '용감하면서도 지혜로운 믿음의 여인'으로 보는 것은 올바른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글라라라는 이름 속에는 '순수한 믿음, 투명한 갈망,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믿음, 희망, 사랑'이 다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이름을 자신의 세례명으로 삼는 자매님이라면, 언제나 신앙 속에서 굳건하게, 용기있게, 사랑스럽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길을 걷도록 주님께 도움을 청해야 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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