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복음 20장 25절의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것은 바칠 것이 있다면 그 원래의 주인에게 '되돌려드리는' 정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당시 세금논쟁을 예수님과 벌이고자 하였던 로마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사실 그 카이사르의 것도 주님의 것이기는 하지만, 카이사르가 가져야할 몫을 부정하지는 않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의무에 대해 긍정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신앙적으로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도로 바치는 마음가짐이 요구된다는 점을 부각시킬 때에 많이 회자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이름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로마 공화정 시대에 실존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입니다. 이 '카이사르'라는 말은 로마 시대의 통치자, 황제를 지칭하는 호칭이었기에, 그 이름을 지닌 사람에게는 막강한 권력이 주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바로 이 '율리우스(Julius)'라는 라틴어로 된 남성의 이름입니다. 원래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신은 바로 제우스 (Zeus) 신입니다. 그리고 로마신화로 넘어오면, 그 신은 바로 주피터 신(Jupiter)이 됩니다. 그래서 '율리우스(Julius)'라는 이름은 바로 이 신중의 신, 왕중의 왕인 주피터 신에게 자신을 봉헌한, 자신의 모든 것을 도로 바친 남성을 두고 '율리우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여성의 이름을 바로 율리안나(율리아나, 쥴리엔, Julien)으로 표기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의 최고신인 '주피터' 신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도로 바친 사람으로서, 로마공화정의 최고의 통치자로 역할을 하였던 사람입니다. 또한 반대로 '주피터' 신이 그를 통해 모든 권능을 부여한 사람으로 활약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진정으로 모든 것을 최고의 신께 되돌려 드리는 행위는 하지는 아니 하였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신격화하여, 마침내는 카이사르 신(Divus Caesar)이 되었습니다. 그는 절대권력에서 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절대신이 되려고 노력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 속에서 율리오, 율리아 혹은 율리안나(율리아나)라는 이름이 지닌 뜻은 정반대의 길을 향해 걸어가야 합니다. 카이사르가 추구하였던 절대신 주피터가,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느님으로 바뀌고, 그 삼위일체 하느님께 자신을 도로 '돌려드리면서 봉헌한' 이유가 더 높아지기 위함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며, 마침내는 주님의 현존을 여과없이 드러낼 수 있는 그런 형제요 자매가 된다는 점에서 다른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 자매님들 가운데 '율리오/율리아' 혹은 '율리안나(율리아나)'라는 이름을 세례명으로 사용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위의 복음말씀이 자신에게 절실히 해당되는 영적 말씀이라는 것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하느님께 도로 돌려드린 봉헌자'라는 신원의식을 가지면서, 일상생활의 의무를 부정하지 않되, 그것이 존재하는 궁극적인 목적에 하느님이 자리하신다는 사실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삶에 감사하며 겸손되이 살아야 하겠습니다.
밤새 가족들과 지인들의 세례명을 찾아보고 읽어보고 그 뜻을 헤아리며 눈물이 나네요. 제 본명에 이런 깊은 뜻이 있고 제 생활의 신조가 있었다니 이제라도 실천하며 살겠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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