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살펴볼 성 발렌티노 주교의 이름도 이 라틴어 형용사의 의미와 동일선상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는 로마제국의 통치가 있던 197년에 21세라는 나이로 이탈리아 테르니교구의 주교로 성품되었습니다. 그는 테르니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창설자이자, 그 도시의 첫 주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로마황제와 그리스도교 간의 박해와 갈등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발렌티노 주교는 클라우디오 2세 황제가 그를 초대하여 그리스도교를 배교하고 신앙을 버리도록 권유하였습니다. 그러나 발렌티노 성인이 이를 완강히 거부하자 그를 처형하려고 했으나, 그 대신에 그를 어느 귀족 가문이 그를 지키도록 하명하였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정한 한 주님만을 섬기려는 충절이 바로 그의 영적 ‘강건함/건강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장미를 사랑했다고 전해지는 발렌티노 성인은, 장미를 약혼한 커플들에게 선물하면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축복해주는 주교였다고 합니다. 또한 말다툼을 하는 두 젊은이들에게 장미 한 송이를 주면서 이를 서로의 손을 맞잡고 쥐고 있으라고 권고했습니다. 서로의 손을 장미 한 송이와 맞잡은 그 젊은 커플이 곧바로 화해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 발렌티노 주교는 탁월한 회개의 설교자였고, 이웃의 필요에 대단히 관대한 사람이었으며, 아주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97세에 클라우디오 2세 황제의 후계자인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박해기간 동안에 감옥생활을 하였습니다. 273년 2월 14일 밤에 푸리우스 플라치두스Furius Placidus라는 이름의 한 군인에 의해 참수를 당해 순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유해는 테르니 주교좌 바실리카에 옮겨 모셔졌고, 1605년 오노라티 주교가 그의 시신을 하나로 모았다고 합니다. 그의 상반신과 처참하게 처형된 두개골이 발렌티노 주교가 참수형으로 순교했음을 증명해주었다고 합니다. 이 시대는 이런 애절하고 간절하며, 한 영혼만을 끝까지 사랑할 정도로 강건한 기개를 가진 이들이 아주 희박해졌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게 여겨집니다. 더욱이 서로에게 자비를 베풀도록 하느님 아버지의 넘치는 사랑과 자비를 더욱더 간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2월 14일 성 발렌티노 주교의 기사도적 사랑을 빗대어, 젊은 여인이 자신을 흠모하고 시중을 들 기사를 선택하는 풍습에서 유래된 발렌타인데이가, 그저 그냥 상업화된 초콜릿 교환의 날로만 기억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와 하나 되는 날,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날, 미래의 일치를 다시한번 다짐하는 그런 뜻 깊은 영원한 사랑과 영적인 사랑의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는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가 우리를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기 위해서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로마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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