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ziano Vecellio, Cain and Abel, 1542-44, Oil on canvas, 298x282cm, Santa Maria della Salute, Venice |
주님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창세 4,9).
성경이라는 종교문학에서 처음으로 묘사한 인간의 잔인성이 나타난 부분입니다. 같은 피를 나눈 사이라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이기심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이 매정하게 변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며, 죄악의 본성이 그런 냉정함이라는 점을 교훈적으로 시사해 주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대체 왜 인간은 죄악을 그리도 무정하게 범하는 것일까요? 인생은 그렇게 허무한 것인가요? 아무리 노력해도 선을 이루기보다 죄를 범하기 그리 쉬운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런 문제에 대한 성경적인 교훈을 주려고, 등장하는 형제의 이름을 '카인(Cain)'과 '아벨(Abel)'로 설정한 것으로 믿습니다. 그럼 이 두 인물의 이름이 지니는 본뜻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오늘 우리가 특별히 주목하는 '아벨'의 영성은 무엇일까요? 거기에 대하여 같이 나누길 희망합니다.
먼저 두 인물의 이름은 모두 구약의 히브리어에서 유래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카인이라고 하는 이름의 히브리어는 카인קָיִן이라고 합니다. 그 뜻은 '창(spear), 기득권의(acquired)'라는 뜻을 지닙니다. 형으로서 지니는 위치와 카인이 저지른 근친살인의 범죄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이름입니다. 반면에 '아벨'이라는 이름의 히브리어는 원래 헤벨הֶבֶל이라고 하여, '숨(breath), 바람(wind)'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일생이 숨 한번 꺼지면 사라지는 그런 스쳐 지나가는 인생임을 묘사하는 이름입니다.
형인 카인은 자신의 시기심으로 아벨을 들로 꼬여내어 살인을 저지릅니다. 순진하였던 아벨은 희생양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바람처럼, 연기처럼 사라지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신약성경에서는 아벨의 죽음을 헛된 죽음이 아니라고 칭송합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에서 그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합니다.
믿음으로써, 아벨은 카인보다 나은 제물을 하느님께 바쳤습니다. 믿음 덕분에 아벨은 의인으로 인정받고, 하느님께서는 그의 예물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믿음 덕분에 여전히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벨의 죽음은 그저 잔인한 형의 시기심 때문에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순교로 여겨졌고, 현재까지도 아벨의 죽음과 유사한 죽임을 당한 이들을 두고, 예언자 내지 순교자의 죽음이라고 보고 믿고 있습니다. 비록 그 이름에는 언뜻 보기에는 '인생무상'과 '허무함'이 있다고 비관적으로 볼 수 있지만, 실상 그 이름에는 "그 얼이 나가면 흙으로 돌아가고 그날로 그의 모든 계획도 사라진다"(시편 146,4)는 말씀에 대한 순종의 영성이 숨어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살다 바람처럼, 연기처럼 사라질 우리의 인생에서 카인처럼 자기 의지를 자기의 것으로 소유하는 사람이 되기 보다는, 아벨처럼 설령 죽임과 핍박을 겪을 지라도 인생이 나아가야 하는 '부르심(Destiny)'에 대해 깊이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인생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순진한 낙천주의자가 되기 보다는, 인생의 문제가 있지만 죽기까지 주님께서 인정해 주신다면 우리는 여전히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낙관론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은 주님이 함께 하시는 한 영원히 살아볼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찬미예수님!
답글삭제아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