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전세계가 팬데믹(Pandemic)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들리는 뉴스에서는 인도에서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생지옥을 맞이하고 있다고 하였고, 가난하고 어려운 지역에서도 여러 가지 의료여건이 맞지 않아서 제대로 산소치료 등의 보존치료를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환자를 자기 몸처럼 아끼려는 의료진들이 더 절실하게 소중한 시절이며, 그들이 맞서고 있는 의료현장의 싸움의 피땀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잊지 말아야 하는 이 때입니다.
코로나19가 터지자 우리의 관심은 인류의 전염병 역사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16세기 유럽에 퍼진 페스트(흑사병)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설가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가 다시 서점가에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소설의 내용은 제2차 세계대전이 있었던 1940년대의 이야기이지만, 흑사병이 타락한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이라고 주장하는 판느루(Paneloux) 신부와 그 주변 인물들이 전인류적 재난 앞에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재난소설의 하나입니다. 과연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해야 마땅할까요?
여기에 실제로 흑사병을 마주한 한 이탈리아 성인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가밀로 데 렐리스'(Camillus de Lellis)입니다. 이 성인이 지닌 이름인 '가밀로'라는 이름 속에 담겨진 하느님의 계획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오늘날 코로나19로 고통받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성인의 전구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이 '가밀로/카밀루스'(Camillus)라는 이름은 원래가 로마시대의 성(姓, family name)에 해당됩니다. 이의 여성형은 '가밀라/카밀라'(Camilla)라고 합니다. 이 말의 기원은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있지 않지만, 유력한 가설로는 로마 시대에 '사제를 돕는 조수/보조'라는 뜻을 지닌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가밀로'라는 이름 안에는 이미 '남을 돕는 사람'이라는 이름의 뜻이 담겨 있는 것이고, 이런 영적 특징이 한 가족의 이름인 성(姓, family name)으로 표현되었던 것입니다.
가밀로 성인은 자신의 어머니가 가밀라(Camilla)였습니다. 아마도 어머니의 성을 따랐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ㅏ참으로 기묘하게도 나이가 50인데 미사참례 중에 산통을 느껴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한때 마굿간으로 썼던 방에서 한 아기를 출산하였습니다. 가밀라는 예수님의 탄생과 성 프란치스코의 탄생을 따라하기 위해 그렇게 낳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밀라는 가밀로 성인이 13세가 되던 해에 그만 세상을 떠납니다.
18세가 되던 해부터 가밀로 성인은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군복무에 몸을 담게 됩니다. 폭력적인 삶을 살았고 무질서한 삶을 살았으며 도박과 노름을 청소년 시절부터 동경하였습니다. 말다툼에 자주 휩싸였고, 급기야는 결투를 신청하여 싸우는 일이 빈번하였습니다.
하루는 도박에서 모든 것을 잃고 만프레도니아(Manfredonia)의 성 도미니코 성당 앞을 지나갈 때에 애긍을 청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거기 있던 카푸친 수도원의 일꾼으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산 죠반니 로톤도의 수도원으로 보냈습니다. 거기의 수도원장인 안젤로 신부님은 가밀로에게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하느님에 대하여 그리고 영혼구원의 필요성에 대하여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래서 가밀로는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꿀 회개의 결심을 하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그렇게 회개의 결심을 한 이후에는 어떤 소죄도 고의로 범죄하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먼저 자신도 카푸친 프란치스칸이 되기 위해 두 번이나 수도회에 입회하였으나, 자신의 발에 있는 궤양같은 상처를 자꾸 수도복이 자극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프란치스칸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로마의 산 쟈코모 병원에 있는 환우들을 돕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과 같다고 결심하고 그 때부터 병원의 환우들을 돕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후에는 이런 이상을 품은 남자수도자들의 수도회를 창설하게 되었고 그것이 가밀로회(Ordo Sancti Camilli, O.S.C.)가 되었습니다.
당시 페스트가 유행하던 때였기에 아무도 선뜻 환우들을 돌보려고 나서지 않았습니다. 환우들은 좋은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이들이었거나 정부 당국으로부터 범죄혐의로 영장이 발부된 이들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무관심 속에서 환우들이 죽어갔습니다. 지금처럼 시신을 기다릴 틈도 없이 침대를 비워줘야 하는 비참한 상황이 빈번했습니다.
1584년에 사제품을 받은 가밀로는 1586년 교황 식스토 5세로부터 새로운 수도회 창설을 인준받았고, 이듬해에 수도복 위에 적십자를 새겨 넣을 수 있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이는 사랑의 불 또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의 고해사제는 필립보 네리 성인이었는데, 필립보 성인이 환우들을 돌보는 수도회 창설을 권유했습니다.
환우들을 돌보느라 다른 겨를이 없을 무렵, 한번은 어느 추기경이 병원에 가밀로 성인을 만나러 찾아왔습니다. 그의 동료 수사가 이 소식을 전해주었을 때에 가밀로 성인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추기경님께 말씀을 잘 전해주세요. 추기경님께서 인내심을 가지셔야 한다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고 있어 바쁘기 때문입니다."
환우들을 향한 사랑이 곧 그리스도 예수님을 품안에서 돌보는 듯한 사랑으로 동일시되었습니다. 가밀로 성인은 동료 수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픈 이들을 가장한 최대한의 정성과 부지런함으로 섬기십시오. 자신의 유일한 아픈 아들을 돌보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인성처럼 가난한 이를 돌보면서 섬기십시오."
가밀로라는 이름처럼 주님의 말씀대로 다른 이들을 돕고 돌보는데 헌신적이었던 이 성인의 삶은 다음의 성경 말씀을 그대로 실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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