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에우제니오 드 마제노, 오블라티 수도회 창설자 |
성남시에는 안나의 집이라는 무료 급식소가 있습니다. 우리가 매체를 통해 잘 알게 된 이 곳에는 벽안의 신부님께서 소박하게 봉사하고 계십니다. 한국 이름은 김하종 신부님, 이태리 신부님으로 이태리식 이름은 빈첸조 보르도Vincenzo Bordo 신부님이십니다. 1990년에 내한하셔서 지금까지 꾸준히 행려인들과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영적 아버지가 되어 주고 계시는 아주 훌륭하신 선교사제이시지요. 이 안나의 집은 IMF로 인해 실직자의 증가와 가정이 파괴되는 안타까운 사회 상황에 따라, 사회사도직으로 세워진 사랑의 보금자리입니다. 그곳에서 현재까지도 충실히 소임을 하고 계십니다.
제가 로마에서 유학하던 시절이니 대략 2017년에서 2018년경입니다. 저희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로마관구 산하의 그렉치오라는 성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은 성 프란치스코께서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구유를 성탄에 사람들에게 전례적으로 현시하신 곳으로 이름이 알려진 곳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친히 방문하셨던 곳입니다. 그 지역은 이태리 리에티(Rieti)라는 지역에 있는 곳인데, 거기 갔더니 어느 이태리 신자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빠드레 빈첸조를 아느냐고?" 저는 금시초문이었는데, 후에 검색해보니 그 빠드레(수도사제를 지칭하는 이태리식 존칭)가 바로 한국에 계신 김하종 신부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을 간접적으로 접하게 되었고, 이미 이태리 교우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신부님께서는 이태리 비테르보 지방의 피아사노라는 시골동네출신이신데, 비테르보가 로마와 멀리 있지 않기 때문에, 또한 리에티도 로마에서 멀지 않기 때문에 제가 한국에서 온 프란치스칸 사제라고 했을 때, 빈첸조 보르도 신부님을 아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신부님께서는 머나먼 타국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살고 계신 것일까요? 그런 의문은 자연스럽게 그 신부님께서 속하신 오블라티 선교 수도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오블라토(Oblato)라는 말은 '헌신자'라는 뜻인데, 이 선교수도회의 정식 명칭이 바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의 오블라티 선교 수도회'입니다. 다시 말해, 무염시태 성모님께 헌신한 선교사들의 공동체라는 뜻이지요. 그리하여 여러 가지 죄악으로 고통에 싸여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선사하는 선교사들입니다.
그럼 이 수도회를 창설하신 성 에우제니오 드 마제노 대주교(1782-1861)께서는 왜 이런 수도회를 창설하신 것일까요? 그런 섭리적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성인의 이름 속에 담긴 영성적 의미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에우제니오 혹은 에우제니아는 그리스어로 ευγενης (에우게네스, eugenes)라는 단어를 라틴어화한 것입니다. 통상 그리스어에서 '좋은, 기쁜'이라는 접두어가 eu(에우)입니다. 그래서 복음이라는 기쁜 소식도 그리스어로 에우앙겔리온(Euanggelion)이라고 합니다. 천사를 뜻하는 앙겔로스(Angelos)가 전해주는 기쁜 소식이라는 뜻이 복음입니다. 이렇게 '좋은, 기쁜'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접두사 에우(eu)와 '태어나다, 발생시키다'는 뜻의 동사 Gennao(겐나오)의 파생형으로 genes(게네스)가 합성됩니다. 따라서 그 뜻은 "well born, noble"처럼 "잘 태어난, 귀족의, 고귀한 삶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가 굉장히 귀한 존재라는 점을 스스로 깨닫고 또 그 혹은 그녀로 인해 다른 사람도 귀한 사람이라는 점을 동시에 함께 깨닫게 되는 이름입니다. 그럼 이런 성인의 이름이 어떻게 해서 오블라띠 선교회의 창설과 연결되었을까요?
성인께서는 1782년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나셨다고 합니다. 어머니께서는 중산층 출신으로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교육을 받을 정도로 아주 부유한 편에 속하셨다고 합니다. 성인의 아버지께서는 귀족 출신이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가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인은 원래가 귀족으로 태어났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그렇게 편하게 잘 살지 못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 시절이 우리가 잘 아는 프랑스대혁명의 혼돈의 시기였기에, 가족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살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혼돈 속에서 성인의 부모님은 이혼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유년시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던 점, 지속적인 가정불화와 가정파괴의 경험은 성인에게 있어 가정의 평화의 중요성을 각골난망케 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성인은 고향 프랑스에서 신학교에 들어갔고 1811년에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바를 실천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희망이 없던 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지향을 가진 이들과 공동체를 이뤘고, 마침내 1826년에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가 교황청 인가 선교 수도회로 발족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1837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께서 성인을 마르세유 교구장 주교로 임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성인은 주교가 된 이후에도 더욱더 선교적인 모습을 펼치셨다고 합니다. 프랑스대혁명으로 말도 못하게 프랑스 가톨릭교회가 피폐해져 있었는데, 성인의 노력으로 인해 많은 남녀수도회들이 탄생되었고, 교회의 쇄신에 아주 큰 공헌을 하신 분이셨습니다. 1861년에 마르세유에서 선종하셨고, 1975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을, 199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셨으며, 도움이 필요한 모든 가정을 위한 수호성인이 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오블라띠 회원들은 어려움에 처한 가정들,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의 선교사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김하종 신부님, 빠드레 빈첸조 보르도와 같은 분이 바로 최고의 모범사례가 되겠습니다.
누구든지 '에우제니오' 혹은 '에우제니아'라는 세례명을 지니는 분들은 유비적으로 성 에우제니오 드 마제노 대주교님의 삶과 성덕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 수많은 유년시절의 피폐함과 파괴, 상처로 인해서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지닌 하느님의 계획을 신뢰하여 스스로가 아주 '고귀한 사람', '이 세상에 잘 태어난 사람'이 되셨습니다. 어느 누구든지 살아야할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셨습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계획 안에 들어오는 그 누구든지, 살아가야할 이유가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면서,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만들어주는 이'(에우게네스)가 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하고 힘들어하며 삶에 대한 희망을 잃은 많은 행려인들과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돌보는데 오블라띠 회원들이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어둠과 슬픔이 가득한 이 지상의 삶일 수 있으나,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활신앙은 이것을 더욱더 강화시켜 줍니다. 에우제니오 혹은 에우제니아라는 이름에 걸맞게, 고개숙이거나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기쁨이 되어주는 형제자매', '희망을 심어주는 스피노자와 같은 사람'이 되는 길이 이 이름이 지닌 영성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