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성 패트릭 데이(St. Patrick's day)라고 하여, 3월 17일을 기념하여 전 세계적으로 아이리쉬임을 자부하는 그런 날입니다. 올해에는 부득이하게 코로나19로 인하여 그 축제분위기를 감지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아주 크게 기념할만한 오늘입니다.
원래 영국이라고 부르는 잉글랜드(England)는 북부의 스코틀랜드(Scotland)와 아일랜드(Irland)와는 민족의 결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한때 로마제국에 맞설 정도로 아주 강건한 민족이었던 켈트족(Celts)의 후예들이었기 때문에, 영국사람인 잉글리쉬들은 아이리시나 스코티시와는 전혀 다른 배경을 갖습니다.
그래서 잉글리시 입장에서는 북부 사람들은 거칠고, 무식하고, 험악하며 사람의 모습보다는 가히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라고 그렇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패트릭은 영국사람으로 389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켈트족은 잉글랜드를 지배하고 있었고, 영국인들은 켈트족의 노예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노예살이에서 탈출한 파트리치오는 서유럽에서 가톨릭 신앙을 알게 되고, 그 가톨릭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헌신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아일랜드 가톨릭의 최고 수호성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 왜 그는 아일랜드 가톨릭의 최고 수호성인이 될 수 있었나요? 그것은 바로 그의 이름 속에 감추어진 영성에 기반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본디 라틴어로 '아버지'를 뜻하는 단어가 '파텔'(Pater)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를 라틴어로 '파텔 노스텔'(Pater Noster, 뜻은 '우리 아버지')입니다. 이 아버지의 후손들을 두고 라틴어로 파트리시우스(Patricius)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본디 '아버지'라고 칭할 수 있었던 계급층은 주로 로마 공화정의 의회격인 '원로원'(Senatus)에 속하는 그런 귀족층들을 말합니다. 그들의 후손들이 바로 '파트리시우스'였던 것입니다. 함께 모여서 통치할 의견을 모으고, 나라의 방향을 세우는 그런 사람들이 아무래도 '지적이고 영적'인 신(Deity)을 모시는 계급층에도 해당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의 아버지 카푸르니오(Capurnio)는 공무원으로 고위층이었고, 불행히도 16살에 노예살이로 인해 감옥에 잡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강제로 목양을 하게 만들었고, 양들을 풀을 먹이는 동안에 하느님의 메시지를 찾으면서, 깊은 기도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3번의 탈출 시도 만에 자신의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빠져나온 이후에, 켈트족의 야만성과 이민족들의 믿음을 교화시키기 위해서, 그는 아일랜드로 돌아가길 염원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이제는 널리 전파하고자 염원하였습니다.
켈트족에게 성경을 전파하기 위해서, 파트리치오는 라틴어를 더욱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신구약성경은 라틴어로 번역된 불가타성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는 사제품도 받게 되었고, 432년에는 주교가 되어 교황에 의해 아일랜드로 파견되어, 435년 3월에 아일랜드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아일랜드 초대 주교였던 성 팔라디우스(Palladius, 7월 7일)를 계승하였습니다.
당시 켈트족은 드루이드(Druid)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드루이드라는 말은 라틴어 복수형의 '드루이데스'(Druides)와 연관이 있습니다. 이 뜻은 로마인들이 켈트족의 신앙을 지칭하면서, 켈트족의 고위 성직-법률 계급을 지칭한 말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드루이드교는 한마디로 '다신교'(Polytheism)입니다. 다시 말해, 신들이 아주 많다고 생각하였고 고위계급인 지식인층이 이런 다신들을 섬기는데 주력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들의 신앙은 한마디로 '애니미즘'(Animism)인데, 곧 만물에 각각의 영이 깃들어 있다는 '정령 신앙'입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돌신', '나무신', '물신', '해신', '달신' 등 만물을 신들로 섬기는 신앙입니다. 그러니 파트리치오가 선포해야할 가톨릭 그리스도교 신앙이란 바로 삼위일체(Holy Trinity)와 유일신(Monotheism)이기에, 그가 감내해야 할 수많은 비판과 어려움이 지금 상상이나 되겠습니까?
파트리치오는 다신론자들인 켈트족에게 어떻게 하면 삼위일체 유일신앙을 가르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그는 초록의 세잎 클로버를 보았고, 그것을 통해 비유로서 삼위일체 유일신앙을 전교할 수 있었습니다. 파트리치오는 사람들에게 "한 클로버에 세 잎이 붙어있듯 성부·성자·성령도 이와 같다."하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그 후로부터 아일랜드 가톨릭 신자들은 오늘날까지 가톨릭을 상징하는 녹색과 세잎 클로버를 상징하는 표시를 한 채로, 3월 17일을 파트리치오 성인의 날(St. Patrick's Day)로 기념하는 것입니다.
또한 파트리치오 주교는 언제나 강론을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하여 큰 인기를 얻었지만, 인기에 휩쓸리지 않고 늘 겸손한 자세로 사람들에게 다가간 참된 목자였습니다. 늘 주님께 대한 기도로 되돌아갈 지점을 설정한 목자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트리치오는 켈트족의 고위 지도층들과의 신뢰를 수립하고 우정을 돈독히 하여, 가톨릭교회를 위한 토지와 수도원설립에 대한 협조를 이끌어 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일랜드를 켈트족의 드루이드 다신론에서 삼위일체 유일신 가톨릭 신앙으로 회개시켰기에, 파트리치오는 과연 국부(國父)로 등극할 만도 했습니다. 조용한 강자로서 이단들과 다신론자들을 회개시킨 위대한 주교요 영적 아버지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런 내적 어려움을 자신의 저서 '고백록'에서 진술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거친 이들을 복음화하기 어려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누구보다 초세기 가톨릭교회에서 위대한 선교사였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의 문화 속으로 침투하여 올바른 가톨릭 신앙을 빠르고 깊게 뿌리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무엇보다 하느님과의 기도를 통한 영적 연합에 부단히 애를 쓴 인물입니다. 그렇게 깊이 뿌리박은 유일신앙과 주님께 대한 열정이 아일랜드를 그 어느 나라보다 충실한 가톨릭국가로 만들었습니다. 비록 지금 여러 위기를 경험하고 있지만, 그래도 전 세계에 뻗어있는 아이리쉬 가톨릭 인구의 영향력은 막급합니다. 미국 동부에도 아이리쉬가 많아서 그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점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의 보호 하에 수많은 이들이 가톨릭 신앙을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파트리시오'라는 세례명을 간직한 이는 우선 삼위일체 유일신앙에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을 공고히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흔들리며 방황하는 이웃에게 이런 신앙이 주는 기쁨에 대해 전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도생활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스승이요 영적 아버지로 자리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과 교회의 선익을 위해 어떤 어려움도 감내할 수 있다는 대단한 부성애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을 살리기 위한 영적 '아버지'와 그 후손들을 신앙의 한 가족으로 일구는 사람이어야 됩니다. 그럴 때에 이 이름에 더욱더 걸맞는 사람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헤아릴 수 없는 선물을 주셨는데,
나의 선행을 통해여 수많은 민족들이 그분 안에서 거듭나게 되었고,
그들에게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생명을 전할 수 있게 은총을 베푸셨다."
-성 파트리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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