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수요일: 마음(Heart)
쓰러져가는 라테란 대성당을 떠받치는 작은 거인 프란치스코를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꿈에서 보게 된다. |
"이제라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요엘 2,12)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마음'이라는 말은 '감정과 지성과 의지' 모두를 통합한 하나의 단어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의 온 '생명력'을 지칭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왜 그분께 돌아와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마지막 구절에 나타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땅에 열정을 품으시고 당신 백성을 불쌍히 여기셨다." (요엘 2,18)
자비(Mercy)는 히브리어로 '자궁(rehem)'을 의미합니다. 즉,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나오는 자녀들에 대한 한없는 열정과 사랑을 두고 자비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마음은 자녀들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 자비로운 마음입니다.
그런 자비로운 마음을 지니신 주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당신 자녀들 누구나 사랑받기 위하여, 무죄하신 어린양 그리스도를 유죄의 희생양으로 내어놓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2코린 5,21)
따라서 자비로운 마음을 지니신 아버지 하느님 덕분에,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을 통하여 그 크신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것보다 '마음'에 더 큰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 '마음'을 깊이 살펴보고, 우리 '마음'이 자비로운 하느님의 '마음'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것들에 골몰하여 '무심'한 상태로 살아가는지 보아야 합니다. 기도도, 단식도, 자선도 신명기의 말씀처럼 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신명 6,5)
기도도, 자선도, 단식도 하느님의 '자비심'을 '진심'으로 알기 위해 한다면,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마태 6,18)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마음'을 다시 바로 세우는 일에 당신의 '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요한 2,19)에서 '성전'은 '건축물'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 하느님의 '마음'을 알아듣고 그분을 '마음'으로부터 섬기는 우리의 '한시적 생명'을 당신의 십자가 수난과 부활로 '영원한 생명'으로 변모시키고자 하시는 까닭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에 무너진 십자가를 다시 일으켜 세웁시다. 그리고 다시 우리 '마음'을 하느님의 '자비심'에 대한 묵상으로 가득 채우도록 합시다. 잠시 멀어졌고, 잠시 냉담하였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우리 모두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위로자 성령께 돌아가도록 합시다. 그렇게 다시금 우리 '마음'을 새롭게 고치는 일에 전념하는 것이 사순절에 아주 뜻깊습니다.
“프란치스코야, 가서 나의 집을 고쳐라. 이렇게 쓰러져 가는 것이 네 눈에는 보이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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