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56] 세례명 '아녜스'(Agnes)에는 어떤 숨은 뜻이 있는 것일까요?

성녀 아녜스, Francisco de Zurbarán (1642)
1월 21일 오늘은 로마의 순교자 성녀 아녜스 기념일입니다. 기원후 3~4세기경에 살았던, 로마시대에 유명했던 한 순교성인이 바로 성녀 아녜스입니다. 그녀는 로마의 귀족 가정 출신으로,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였습니다. 평소 늘 하느님께 대한 순결한 삶을 바칠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로마제국의 제45대 황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 박해를 할 때, 신자임이 드러나 총독 앞으로 끌려갔습니다. 총독이 괘심죄를 들어서 그녀를 로마의 매음동굴로 보내는 형벌을 내렸지만, 성녀 아녜스는 영웅적인 용덕(勇德)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신의 정결을 성공적으로 지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성녀 아녜스는 참수형을 받아 순교의 월계관을 썼습니다.

이런 성녀 아녜스의 삶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에는 그녀의 이름의 뜻이 한몫을 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놀랍게도, 그녀의 이름의 어원이 갖고 있는 뜻이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아녜스는 Agnes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 이름은 그리스어에서 그 어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어 형용사 ἁγνός(하그노스)는 그 뜻이 'pure, chaste, modest, innocent, blameless'에 해당됩니다. 이를 다시 풀어서 설명하자면, '맑고, 소박한, 겸손한, 순수한, 떳떳한'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그래서 아녜스라는 이름의 뜻을 풀어보자면, '맑고 순수하게, 소박하고 겸손하게, 그리고 정직하고 떳떳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게 됩니다. 마치 성녀 아녜스가 보여줬던 모습대로, 이 이름을 가지는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그리고 이웃들 앞에서 가식없이, 투명하게, 그리고 떳떳하게 살아가는 그런 기품이 있는 여인이 되는 것입니다.

한가지, 유념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순수와 순결을 생각할 때, 흔히 착각하는 것이 아무런 결점이 없는 무결점주의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학파 사람들은 유물론적 세계관을 강조하였습니다. 유물론이란, 오직 물질만이 세상을 구성하는 유일한 재료라는 뜻을 주창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우리 마음을 동요시키는 여러 가지 감정들, 심지어 사랑까지도 모두 무용지물이라는 물질중심주의로 환원시켜버리는 논리를 전개합니다.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에 반대하여, 그리스도교 철학자들은 모든 것은 하느님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으로 이뤄진다는 사랑 중심주의를 전개하고 있고, 그런 사랑으로부터 물질이 탄생하였다는 창조론적 세계관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정결/순결문제를 두고서 위와 같이 물질중심주의적으로 본다면, 다른 두가지 성격이 서로 혼합되어서는 절대 안된다는 시점을 강조할 것입니다. 이는 거의 완벽주의와 세심증에 다다르기 쉬운 길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방향으로 그리스도교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19세기말의 영국 성공회 출신으로 로마 가톨릭교회로 회귀하여서, 추기경좌에 오른 존 헨리 뉴먼 추기경은 이렇게 정결에 대해 정의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느님께서는 순결한 자를 사랑하는 이로 생각하고 있다면 잘못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한 대상에 대해 끝까지 충실한 사람을 사랑하는 참된 사랑을 사랑하는 이를 아끼고 사랑하신다.'

아녜스라는 세례명/수도명이 주는 영성은 이렇습니다. 무엇보다 정직하고 투명한 여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는 단순히 성(sexuality)에 대해서 국한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삶이 자신이 마주하는 하느님과 타인 앞에서 정직하고 투명한 여인이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소박하고 겸손해야 하겠습니다. 아녜스라는 이름이 주는 뜻처럼, 누구 앞에서 과시하면서 상대를 무시하는 그런 거만한 여성이 되서는 안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로부터 비난도 받지 않으면서, 떳떳하게 살아가는 당당한 여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정직, 겸손, 떳떳함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아녜스라는 이름의 영성이 되겠고, 이를 새기고 살아갈 때, 비록 피로 순교하는 로마의 성녀 아녜스가 되지는 않겠지만, 이 시대의 숨은 성녀 아녜스들이 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완벽할 필요는 없지만, 사랑이 완전한 여인이 될 필요는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성녀 아녜스와 아녜스라는 이름의 영성을 되새기면 좋겠습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38] 세례명 '소피아' (Sophia)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을까요?

프랑스 여배우 소피 마르소 제가 어린 시절에 문방구에 가서 물건을 살 때면, 항상 저보다 더 나이가 많았던 형들이 그 문방구에서 옆의 소피 마르소의 사진으로 코팅이 된 책받침을 많이 사가는 것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만큼 미모가 출중하고 많은 이들의 여신으로 추앙받을 만하였기 때문이겠지요. 옆의 사진이 근래의 사진이라고 하며, 어린 시절의 전설의 사진들을 검색하여 보면, 지금 여느 아이돌을 능가할 정도의 미모를 가진 여인으로 나타납니다. 정말로 대단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배우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이름을 프랑스어로 표기하면 Sophie Marceau가 됩니다. 프랑스어식 발음으로 '소퓌 마~르소'가 되겠구요. 특별히 그녀의 이름인 이 'Sophie'는 서양에서는 아주 많은 이름이고, 이것은 우리가 살펴볼 '소피아'의 프랑스어식 변형이라는 점을 알아두면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이 이름은, 영어로는 Sophie라고 해서 불어식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고, 그리스어나 독일어에서는 Sophia라고 하며, 그리고 러시아어 등의 슬라브어 계열에서는 Sofia 혹은 Sonia(소냐)라고 합니다. 그래서 슬라브계열의 여성 이름들 가운데 소냐가 많은 경우가 있는데, 이 'Sonia(Sonya)', 즉 '소냐'라는 이름은 모두가 Sophia, 즉 소피아라는 이름의 변형이라는 점을 알아두는 것도 흥미로울 것입니다. 그럼 이 소피아 혹은 소냐라는 이름이 지니는 뜻은 무엇일까요? 원래 이 이름은 그리스에서 기원한 것입니다.  Σοφια (Greek)라고 하는 여성명사에서 기원이 되었는데, '소피아'라고 읽고 그 뜻은 '지혜' (智慧,wisdom)입니다. 원래 이 소피아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철학에서 자주 등장하던 단어입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파르메니데스 등 고대 그리스철학자들이 그렇게 갈구하던 단어이고, 서로 저마다 자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29] 세례명 '율리오/율리아' 혹은 '율리안나 (율리아나)'에는 어떤 뜻이 숨어있는 것일까요?

루카복음 20장 25절의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루카복음 20장 25절 말씀 형상화 "카이사라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이것은 바칠 것이 있다면 그 원래의 주인에게 '되돌려드리는' 정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당시 세금논쟁을 예수님과 벌이고자 하였던 로마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사실 그 카이사르의 것도 주님의 것이기는 하지만, 카이사르가 가져야할 몫을 부정하지는 않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의무에 대해 긍정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신앙적으로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도로 바치는 마음가짐이 요구된다는 점을 부각시킬 때에 많이 회자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이름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로마 공화정 시대에 실존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입니다. 이 '카이사르'라는 말은 로마 시대의 통치자, 황제를 지칭하는 호칭이었기에, 그 이름을 지닌 사람에게는 막강한 권력이 주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바로 이 '율리우스(Julius)'라는 라틴어로 된 남성의 이름입니다. 원래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신은 바로 제우스 (Zeus) 신입니다. 그리고 로마신화로 넘어오면, 그 신은 바로 주피터 신(Jupiter)이 됩니다. 그래서 '율리우스(Julius)'라는 이름은 바로 이 신중의 신, 왕중의 왕인 주피터 신에게 자신을 봉헌한, 자신의 모든 것을 도로 바친 남성을 두고 '율리우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여성의 이름을 바로 율리안나(율리아나, 쥴리엔, Julien)으로 표기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의 최고신인 '주피터' 신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도로 바친 사람으로서, 로마공화정의 최고의 통치자로 역할을 하였던 사람입니다. 또한 반대로 '주피터' 신이 그를 통해 모든 권능을 부여한 사람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11] 세례명 '글라라'에는 어떤 뜻이 담겨져 있을까요?

아씨시 성녀 글라라 대성당 지하에 모셔진 글라라 성녀 유해 앞에서 프란치스코란 이름의 영성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 안에는 '자유'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프란치스코와 항상 함께 등장하는 이름이 바로 '글라라'입니다. 아씨시의 성녀 글라라, 성 글라라 봉쇄수도원의 창립자, 전세계에서 가장 큰 여성봉쇄수도원을 지칭하는 성 글라라 수도원의 최초의 영적 어머니, 이 글라라란 이름의 뜻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란치스코도 그러했듯이, 글라라라는 이름도 라틴어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12~13세기 중세의 인물이었기 때문에, 구약의 히브리어나 신약의 그리스어가 아닌 대중적인 라틴어로부터 이름을 따왔던 것입니다. 라틴어로 보면, 이 글라라는 철자가 Clara입니다. 이는 남성형용사 Clarus의 여성형입니다. 그래서 Clara입니다. 다시 이 형용사의 뜻을 살펴보면, 'transparent, clear"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라틴어 Clara가 스페인어로 와서는 그대로 Clara라고 표기합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이 계란의 흰자 부분을 두고 'clara'라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투명함이 백색으로도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태리어로는 Chiara (끼아라), 프랑스어로는 Clare (끌레르), 영어로 Clare (클레어)로 표기하고 발음합니다. 독일어로는 Klara라고 하고, 참고로 독일어에서는 '설명'이라는 명사가 Erklärung이라고 하여서, 상대를 두고 명료하게 만드는 것을 두고 '설명'이라고 정의하는 독일어식 뉘앙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현대의 국문표준법상, 우리나라의 첫 음절은 ㅋ, ㅌ, ㅍ 등은 그보다 약한 소리인 ㄱ, ㄷ, ㅂ로 표기하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클라라'가 되겠지만, 한국표준법에 따라서 '글라라'가 됩니다. 같은 경우로 Pet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