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엔의 힐데가르트 (Hl. Hildegard von Bingen, 1098-1179) |
2천년 밀레니엄을 맞이하면서, 사회에 달라진 풍조가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웰빙'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천연효소, 천연약품, 천연식단 등을 얻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제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레 가톨릭교회의 영성적 전통과 특히 수도영성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현재 독일의 성녀 힐데가르트 폰 빙엔의 우주적 치유법을 이용해서, 허브를 이용한 크림 등을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창조신학에 대한 강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여, 우주적인 영성으로 사람과 자연을 대하는 영성을 확산시키고 있으며,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바로 직전시대에 활동한 교회의 여인으로, 생태영성의 양대산맥으로 손꼽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 힐데가르트 성녀가 왜 우주적 생태영성의 어머니로 자리잡은 것일까요?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고, 또 어떻게 영향을 주었기에 오늘날 가톨릭교회에서 기억되고 있는 것일까요? 그녀가 지닌 이름인 '힐데가르트'의 뜻을 보면, 이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힐데가르트라는 이름은 게르만어 계열의 이름입니다. 즉, 노르웨이, 스웨덴 등의 스칸디나비아 계열의 이름에서 그 어원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게르만어 고어에서 이 이름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옛 게르만어(독일어)에서는 Hild는 'battle, fight'라는 뜻을 지니며, gard는 'enclosure'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hild는 '투쟁, 전쟁, 싸움'이 되는 것이고, gard는 '울타리를 두른 지역, 담을 친 공간, 울타리'라는 뜻을 지니는 것입니다. 이 두 명사가 합성된 복합명사이므로, 그 뜻을 유추해본다면, 이는 '어떤 특정한 목적의 투쟁을 위해 울타리를 두른 공간, 혹은 그 울타리'를 뜻하게 됩니다. 이를 한 개인의 이름이라는 차원으로 연결시켜보면, 그 사람은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담대히 싸워나가면서, 자신의 고유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목적을 이루는 투쟁을 위해 울타리(담벼락)이 되어 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것이 영적인 선익을 위한 목적이라면, 복음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교회에 메시지를 주기 위한 투쟁을 벌이는 것이라면, 이 이름이 지니는 뜻과 그녀의 삶은 일치합니다. 너무나 놀라운 하느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살았던 중세 교회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더욱 수긍이 갑니다. 역사적으로 중세(the Middle Ages, 5-15세기)를 두고 '천년왕국'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단일한 종교인 로마 가톨릭교회 중심의 '그리스도교 왕국' (Christendom)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당시의 핵심갈등은 지역군주 vs 교회고위성직자들 간의 주도권 쟁탈전이었습니다. 누가 더 우위에 있으며, 누가 제일 먼저 앉을 것이냐에 따르는 것이지요. 독일어에서는 Vorsitzender라는 남성명사가 있는데, 뜻은 '회장, 의장, 최고책임자'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제일 앞자리에 앉는 사람'이라는 뜻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속군주가 제일 앞자리에 앉을 것인가, 아니면 교황을 비롯한 주교들이 제일 앞자리에 앉을 것인가? 이 물음이 당시의 사회와 교회를 지배하는 그런 제1물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었기에, 이를 두고 이태리 시인인 프란치스코 페트라르카 (Francesco Petrarca)는 중세를 '암흑기'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의 빛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그런 권력의 '암흑기'였던 것입니다. 동시에 라틴어는 암호화되어서,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이는 교회엘리트계층 뿐이었고, 성경은 물론 신앙의 빛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영지주의, 곧 물질을 천시하고 영적인 것을 최고로 여기는 이원론이 다시 등장합니다. 카타리파(알비파)라는 이단이 생겨나서, 로마가톨릭교회의 내분이 야기되고, 순수한 신앙심을 찾던 일반신자들이 그 흐름을 따라가는 그런 현상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런 배경이 있던 가운데, 교회쇄신운동의 새벽이 시작됩니다. 특히나 서방 로마가톨릭교회의 수도회의 맏아들인, 베네딕토회 계열의 남녀수도자들로부터 이 쇄신의 새벽이 시작되었습니다. 남자는 후에 시토회를 창설하게 된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이고, 여성을 꼽자면,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입니다. 그녀는 1136년 38세에 베네딕토 수녀회 원장수녀가 되었고, 1141년에 계시를 받아 예언자적 소명을 지닌 담대한 여성수도자로 거듭나게 됩니다. 1148년에는 빙엔의 루페르츠베르그(Rupertsberg)에 새로운 수녀원을 설립하고, 1150년에는 기존의 베네딕토회 수녀들과 함께 자신이 새롭게 설립한 수녀원에서 계속해서 수도생활을 해 나갑니다.
그녀가 얼마나 담대하였는지 한 예를 보여주는 것이 있는데, 당시 여성수도원은 남성수도원 담장 내에 있는 부속수도원이었다고 합니다. 그저 그런 인식을 혁파해내고, 새롭게 여성수도원을 스스로 창설한 것도 여성수도영성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며, 그녀의 담대함을 보여주는 업적이 됩니다.
동시에 그녀는 소우주(인간)/대우주(그리스도)라는 차원에서 우주론적 그리스도론을 전개하였습니다. 우주의 중심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콜로새 1,13-20). 이 말씀에 기반해서 모든 것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두고, 그 우주적인 말씀으로부터 모든 사고를 전개시켜 나갔습니다. 이는 교부들이 말하듯이, 신자들의 믿음을 키우기 위해서 모든 것을 그리스도로 수렴(recapitulation)을 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기에 더 놀랍습니다. 그녀가 받은 계시와 예언자적 소명은 그야말로 교부들과도, 복음의 진리와도 일치하는 것이었기에, 후에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 2012년 5월 10일 그녀를 '교회박사'로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혼란과 혼돈, 암흑의 시대에 중세 최초의 여성예언자요, 여성수도영성 창설자로 선의의 투쟁을 벌였던 힐데가르트 폰 빙엔 성녀는, 자신의 이름 안에 있는 영성대로 살았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섭리대로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만의 목적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고, 자신과 함께 하는 동료수녀들, 독일의 지역교회 사람들과, 나아가 시대도 지역도 인종도 언어도 초월한 우주의 모든 소우주들이, 대우주이신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영적 투쟁을 할 수 있도록 보호해주고 인도해주는 그런 '울타리'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영성으로 그렇게 나아가도록 특정한 것도 그녀의 큰 영적 공로라고 하겠습니다.
누구든지 힐데가르트 성녀의 이름을 세례명이나 수도명으로 따서 사용하고자 하는 이는, 자기 개인만의 투쟁만을 신경써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히려 이름에 걸맞게, 자신과 함께 하는 모든 이웃들, 동료들이 공통의 선익을 위해 투쟁할 수 있도록 자신이 밑바탕이 되어주려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영성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자신이 울타리가 되어주고,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고자 노력하는 여성이 될 때에, 자신의 세례명 혹은 수도명인 이 힐데가르트의 영성을 몸소 살아가는 지혜롭고 담대한 여성예언자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마르 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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