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일 요한복음 15장 1-8절 포도나무의 비유
오늘 우리가 들은 이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의 비유는 바로 '일상에서의 영광에 대해' 강조하는 비유입니다. 왜 이 비유가 '일상에서의 영광에 대해 이야기하는 비유로 이해되는가'에 대해 한번 풀어서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열매'에 대해 굉장히 강조하는 표현들이 나옵니다. 농부이신 아버지께서 열매가 맺혀 있으면 놔두시고, 없으면 쳐내신다는 표현을 쓰면서, '열매맺음'에 대해 강조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열매맺음'에 대해 강조를 하신 것일까요? 요한복음이 쓰여진 역사적 배경을 들여다보면, 당시에는 하느님의 선택된 민족이라는 선민의식에만 도취된 유대인들이 많았고, 그들은 그저 율법규정의 준수에만 몰입하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글자 그 자체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이 자신들을 규정하는 유일무이한 척도가 되었기 때문에, 결코 그것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이들과 차별화를 기해야하는 그리스도교인들로서는 자연스럽게 규정과 문자적 의미에만 집착하는 이들과는 달라야 했고, '열매'라는 단어가 가장 핵심기준으로 등장하였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DNA상으로 유대인이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구원보편주의를 내세우는 그리스도교인들의 공동체였기 때문에도 그런 법이 인정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요한복음에 따르면 하느님의 법을 '믿는' 자들이 아니라, 더 나아가 하느님의 법정신 '안에' 머무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역설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법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자녀 인간들이 더 좋은 삶, 더 올바른 삶, 더 많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길을 걷도록 가이드하시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법정신'입니다. 그런 정신을 이해하고 그런 정신을 실천하려고 하면서 공감해나갈 때에 이 비유의 목적이 '내 안에 더욱 더 크게 머무를 수 있게 됩니다.'
마침내 제일 큰 열매가 맺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영광'입니다. 무엇인가를 크게 이뤘을 때에만 사용하는 단어가 영광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말하는 영광은 '언제나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나와 우리와 함께 하시는구나를 벅차오르게 느끼는 경우를 두고 평화라고 하는 것이 올바른 이해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 평화'는 하느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믿는 이들과 함께 하신다는 엠마누엘 믿음을 강화시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표현입니다. 멀리 떨어져서 안보이고 무관심하게 계시는 것 같아서 안보이는 그런 느낌 속에서만 머물고 있을 때에 우리에게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로 그 갭을 부지불식간에 매워주시는 분이 당신 하느님이라는 점을 역설하는 것입니다.
사회에서는 큰 공로를 쌓아야 영광스럽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만, 교회에서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 하나로도 금방 '영광'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격이 누구에게나 주어진다는 점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도 오늘의 복음에 숨겨져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맥락의 연장선 상에서 최근 교황님께서 발표하신 사도적 권고 "기뻐하고 환호하여라" (Gaudete et Exultate)의 가르침과도 일치합니다. 교황님께서는 우리의 일상의 삶의 현장 속에 바로 거룩함이 숨겨져 있고, 영광이 드러난다고 강조하십니다. 어머니는 주부로서의 가사를 돌볼 때, 자녀들은 주어진 학업과 효도에 충실할 때, 직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자신의 성과를 발휘할 때, 즉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우주적 질서 속에 부응하며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그것이 바로 일상에서 성인이 되고, 영광을 드러내는 길이라는 점을 거듭 거듭 강조합니다.
현대사회를 위한 가톨릭교회는 이제 서로 동등하게 질문하고, 대답하며, 서로 공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여전히 신자들은 배우기만(learning) 하고 사제들은 가르치기만(teaching) 하는 일방적인 관계에서 탈피하여야 합니다. 이제는 공감하고(feeling) 치유하는(healing) 교회공동체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바로 일상에서의 영광을 추구하는 길 위에 교회가 항상 함께 동행할 것입니다. 좀 더 깊이 우리의 교회적 사고를 진화시키면서, 창조로부터 주어진 삶의 질서 안에서 어떻게 훌륭한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해나가시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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