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멜 산위의 엘리야 석상 |
“저는 주 만군의 하느님을 위하여 열정을 다해 일해 왔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당신의 계약을 저버리고 당신의 제단들을 헐었을 뿐 아니라, 당신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이제 저 혼자 남았는데, 저들은 제 목숨마저 없애려고 저를 찾고 있습니다.” (1열왕 19,10)
야훼 주 하느님께서 우상숭배에 빠진 북 이스라엘 왕국에 보내신 예언자 엘리야에게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엘리야야,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1열왕 19,9)
거듭 동일한 질문을 건네시는 주님께 엘리야는 위의 답변을 반복합니다. 자신의 소명과 열정을 다해 하느님을 위해 일했는데 위협을 당하는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이러한 예언자적 열정은 바로 자신의 이름의 뜻에 의해, 그리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의해 이미 '안배'되었다는 점을 이야기합니다. 어떤 뜻이 이름에 숨어 있길래 그럴까요?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래의 이름을 보면 이는 구약성경의 히브리어로부터 기원합니다. אֱלִיָּהוּ ('Eliyyahu, 엘리야후)가 원래의 이름인데, 이 말은 "나의 하느님께서는 야훼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야훼 하느님'이라고 하는 이름의 뜻에는, 구약의 이스라엘 유일신 신앙에서 바라본다면, 그분은 '신들의 신, 왕들의 왕이신 분'이라는 주인이신 하느님이라는 그런 강력하고 유일무이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하느님이 바로 야훼이시라는 점은 그만큼 강력하고 유일무이한 신앙의 의미를 강조하는 셈이 됩니다.
그런 강력한 하느님께서 엘리야를 어디로 보내시느냐 하면, 바알신 우상숭배에 빠진 아합왕 (기원전 9세기 북 이스라엘 왕국)에 대항하여, 야훼 유일신앙으로의 회개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드높인 예언자였습니다. 기득권들이 자신의 뿌리와 근본을 망각하고 지내면서 오히려 권력으로 우상숭배를 묵과하는 오류에 빠진 이들을 꾸짖는 열성을 다하는 인물이 바로 이 엘리야 예언자입니다. 그래서 열왕기 19장에서는 이제벨 여왕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아서 하느님께서 호렙 산으로 다시 부르십니다. 그리고 호렙 산은 바로 모세가 십계명의 석판을 받은 곳입니다. 그리고 산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신성한 장소로 성경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엘리야가 저리 흔들릴 때에 하느님 자신의 속성을 계시하십니다. 조용히 보이지 않게 나즈막하게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점을 계시하십니다. 다른 우상의 신들처럼 눈을 현혹하는 기적들로 마음을 뺏기 보다, 조용히 근본을 강화하시는 분으로, 자애로우신 아버지의 모습의 하느님이심을 강화하십니다.
엘리야 예언자 이야기를 통해 전달되는 영성은, 바로 '야훼 하느님께서는 나의 아버지이시다'라는 점입니다. 멀리만 계시는 듯하고 아니 계시는 듯한 그분께서는 언제나 아버지로서 조용히 채근하시고 자애롭게 기다리시는 분이라는 점을 전하십니다. 또한 시련과 우상숭배로 인해 시선을 돌린 자녀들을 기다리시면서 대신해서 메시지를 전할 예언자와 교회를 파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야 예언자는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더욱 더 맞서고 열성을 다해 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야 예언자의 이름을 간직한 모든 분들은 바로 이점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의 아버지이시다' 바로 이런 영성적 메시지를 열성을 다해 전파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는 점을 말입니다. 비록 자기에게 그와 반대되는 시련과 자신을 반대하는 권력이 작용해도, 갑질에 의해 눈물을 흘려야하는 을이라고 해도 공감력 갑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끝까지 믿으며 열성을 다해 이 메시지를 살고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그 영적인 길을 말입니다. 모두에게 필요한 은총을 주시고, 그 길로 인도하실 용기마저도 허락하시는 하느님 아버지께 깊이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엘리야 예언자의 이름을 높이 기리며 살아야하겠습니다.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1열왕 19,7)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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