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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35] 세례명 '이냐시오' 혹은 '이냐시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일까요?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우리 가톨릭 신자들 가운데에서 흔히 하는 농담 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교황님께서 모르시는 세 가지 비밀이 있다고 합니다. 첫번째는 전세계의 얼마만큼의 수녀회들이 있는지 모르신다고 하고, 둘째는 프란치스코회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신다고 하며, 마지막 셋째로는 예수회 총장님의 마음 속에 무슨 생각이 담겨져 있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물론 이는 지금의 교회 상황을 반영하는 농담이었다기보다, 과거 중세나 르네상스 시기 전후의 교회가 한창 왕성하였을 때를 반영하여 그것을 가지고 만든 농담입니다. 

특히나 지금은, 전자통계 등으로 인해서 전 세계에 얼마만큼의 수녀 수사들이 있는지 다 이미 집계가 되어 교황청 수도회성 컴퓨터 안에 저장이 되어 있는 상황이고, 프란치스코회의 재산이 800여년이 넘는 수도회의 역사 가운데 축적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당장 현실을 보았을 때 실제로 빈곤을 겪고 가용자산이 없는 전세계 프란치스코회 가운데 어느 특정 나라의 관구본부가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일반화해서 이야기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또한 이제는 예수회 최초의 교황이신 교황 프란치스코 (호르헤 베르골리오) 덕분에, 예수회 총장님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모른다는 농담의 저의였던, 예수회 총장을 이른바 Black Pope라고 부르면서, 예수회 총장님과 교황청 간의 긴장관계를 비유하여 만든 이 농담이 그리 현실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농담이란 과거의 현실을 풍자하면서 비판하기 위해 존재하지, 분열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건전한 비판과 개선을 위해서 우리가 흔히 하는 이야기이지, 결코 비난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농담의 올바른 목적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런 가운데 1491년 10월 23일 스페인 영토 내에 위치한 바스크 지방의 로욜라라는 곳에서 태어난 Iñigo (Ignacio), 즉, 이니고 (이냐시오)라는 이름을 가진 3형제 가운데 막내인 남자가 훗날 가톨릭 교회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횃불'이 되었고, 그 '횃불' 아래에 모여든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예수의 동반자회'라는 뜻의 '예수회'라는 남성 사도생활단(Societas Apostolicae)을 창설하게 됩니다. 후에 1622년 3월 13일 교황 그레고리오 15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이 되었습니다. 7월 31일을 축일로 지정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가 1556년 7월 31일 로마에서 선종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 날을 축일로 지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지닌 이 '이니고(이냐시오)'라는 이름이 어떤 영성을 품고 있는 것일까요? 거기에 대해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그가 태어난 지역은 바스크라는 동네인데, 여기는 현재의 스페인어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지리적으로 스페인의 영토 내에 현재까지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스페인어를 겸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원래의 이름인 이 '이니고'라는 말은 바스크어 '에네코(Eneko)'의 스페인어화된 이름입니다. 그리고 이 '에네코'는 바스크어로 원래가 '나의 귀염둥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가톨릭교회의 영향 하에 있었기 때문에, 교회의 공식 언어였던 라틴어로 이름을 표기하게 되면서, '불, 횃불'을 의미하는 Ignatius로도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라틴어에서 기원한 영어 동사가 바로 ignite (이그나이트, 불을 붙이다, 촉발하다)라는 단어가 됩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잘 받으면서 '막내 귀염둥이'로 잘 성장하게 되었고, 신앙심도 아주 충만한 상태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청년이 된 그는 군인이 되기를 원했고, 결국 스페인의 치하에 있던 나바라 지방이라는 곳의 안토니오 데 라라 총독 하의 군대에 입대하여, 나중에는 그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근무하게 됩니다. 이 당시 정치적 상황은 매우 격렬하였습니다. 전통적으로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중심으로, 과거 로마제국의 영광을 계승한다는 명목으로 건설된 여러 유럽왕조들의 연합국인 '신성로마제국' (합스부르크 왕가)이 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신성로마제국과 긴장관계를 맺고 있던 프랑스왕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동맹도 전쟁도 벌이는 그런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자리를 두고 경선을 벌이게 됩니다. 그것도 내부의 왕조가 아니라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왕이 경쟁하게 됩니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수와 1세, 스페인에서는 카를로스 1세가 경합하게 되었는데, 자신의 조부였던 막시밀리안 황제가 합스부르크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까닭에, 자신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이에 앙심을 품은 프랑수와 1세가 합스부르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이른바 팜플로냐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팜플로냐 전쟁이란, 스페인 치하에 있던 나바라 지역(스페인 치하에 있던 바스크 지역의 일부분, 프랑스와의 접경지역)의 사람들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주민을 이용하여 내분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팜플로나의 지역에서만은, 사령관이었던 로욜라의 이냐시오의 군대와 맞서게 되면서 불가피하게 프랑스 군대와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그리고 1521년 5월 20일 전투에서 프랑스 군대가 쏜 포탄에 맞아 한쪽 다리고 골절이 되는 부상을 입게 되고, 그리로부터 한동안 고향에서 요양생활을 보내게 됩니다. 

그가 1521년에 병상에 누워있는 가운데, 여러 성인전들도 읽게 되었고, 특별히 그도 재속 프란치스코회(OFS, Ordo Fratrum Secularum)의 회원이었기에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에 관한 책들도 많이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한때 자신의 사회적 명예와 기사직을 위해 헌신하였던 시간들에 대해 회개하게 되었고, 성 프란치스코나 성 도미니코보다 더 영웅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가톨릭 교회에서 위대한 성인 가운데 한명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그러한 자신의 회심체험 이후에, 그는 다른 여러 사람을 돕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지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는 지적인 봉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마침 종교개혁으로 가톨릭교회가 사상적으로 붕괴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사회의 지적 지도층부터 일반 대중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의 지적 및 영적 양성을 위해 봉사하는 사도직에 투신하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 전세계 수많은 종합대학교 및 일반교육기관들을 보유하게 되는 예수회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미국 위스콘신 관구로부터 오신 미국 예수회 신부님들의 선교로 인해, 서강대학교가 설립되었고, 현재도 많은 사람들을 양성하고 있는 좋은 교육기관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게 가톨릭 교회의 수호와 재건을 위해, 교회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어디든지 실행하기 위해, 베네딕토회, 도미니코회, 프란치스코회 등 창설자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따는 예수회가 되어서 예수님의 군사로서 행동하리라고 맹세하게 됩니다. 그리로부터 그에게는 라틴어로 'Ad Maiorem Dei Gloriam', 즉, '하느님께서 더욱 큰 분으로 칭송받는 그런 영광을 되돌려드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는 영성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영광을 되돌려드리기 위한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 '식별'하는 그런 '영신수련'이라는 영적 훈련 프로그램을 창시하게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교회 전통의 한 부분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에 따라, 처음에는 그냥 '사랑받는 귀염둥이'라는 뜻이었으나, 점차 주님을 향한 열정에 타는 '횃불'이 되었고, 다른 사람들의 길을 '밝혀주는' 계몽자가 되었다는 점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특별히 인간의 지성을 하느님께로 고양시킬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에 헌신하였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결론적으로, 누구든지 이 '이냐시오' 혹은 여성형인 '이냐시아'를 자신의 세례명으로 갖고 계시는 분이라면, 우선 어디에 있든지 주변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요구될 것입니다. 다만, 그 동기가 그저 자신이 관심받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라서, 아니면 애정결핍적인 측면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런 사람들의 어두움을 '밝혀주어서' 무엇이 하느님을 위하는 것인지 '식별하도록' 돕는 '횃불'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완전히 주 하느님께 그대로 돌려드리고 싶어한 그 갈망보다 더하게, 그래서 사람들이 전부가 되시는 주님을 알아보도록 '촉발하는 자'라는 이름의 영성에 맡도록 살아야하겠습니다. 자신이 아닌 이들에게 '믿음의 열정'을 지르는 길을 걷는 것이 이 이름에 걸맞는 영성을 살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 이름과 이 성인의 삶을 통해 알아듣습니다.

받으소서, 오 주여, 나의 모든 자유를

나의 기억, 나의 마음 그리고 나의 의지

모든 것을 받으소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이나

당신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당신의 의지에 의해 완전히 지배받기 위해서

당신에게 그 모든 것을 돌려드립니다

당신의 사랑과 은혜를 주십시오

그러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외 나는 아무 것도 원치 않습니다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의 기도 (가톨릭성가 221번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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