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13일 사순 제5주일
요한 8,1-13
종종 해외토픽을 통해서 전해듣는 소식들 가운데, 아직까지 여성에게 투석형을 가하는 법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가차없이 투석형을 통해 여인을 사형시키는 곳들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묻게 됩니다. 과연 그 나라에서는 여성이란 존재의 의미가 무엇일까? 그냥 부속물과 같은 느낌이 아닐까? 여성도 인간으로 여기는 것일까?
법의 글자가 있고, 사람의 존엄과 평등이 있지만 그들에게는 아마도 전자가 더욱 중하게 여겨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전통에 있어서 그들은 상당히 보수적으로 법을 집행한다는 것을 보면서,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할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비록 종교가 다르고 전통이 다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그들에게 이런 저런 평가를 내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런 사태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동일한 근원에 대해 생각하고 각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우리 모두가 하느님으로부터 기원한 동등한 근원에서 온 동일한 본성의 인간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인권경시풍조를 다소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요한복음이 이야기해주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런 내용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요한복음 8장이 후대편집에서 새롭게 삽입된 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기존의 요한복음의 신학과는 다소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원래 요한복음저자의 신학과는 좀 다른 모양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더욱 더 성자 예수님을 통해서 증언이 되는 하느님의 '자비와 인간애'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로, 자궁으로 지은 간음죄를 하느님의 '자비'로 교체해주십니다. 그렇게 용서해주십니다. 구약성경의 히브리어에서 여성의 자궁은 rehem(레헴)이라고 하고, 그것의 복수형인 rahamim(라하밈)은 '자비'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궁으로 지은 죄를 자비로 갚아주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교우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항상 자신의 근원에 대해 상기해야할 의무를 가졌다는 점을 잊지 않도록 합시다. 그래서 신앙생활에서만큼은, 우리가 직책과 역할과 업적과 성과와 죄악에 상관이 없이 동일하게, 어머니라는 여인의 태를 통해 태어난 인간이라는 점을 항상 기억하도록 합시다. 그러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간음한 여인을 추궁하지 않고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절대적인 것이 타인에게는 상대적인 것이 되고, 나에게 상대적인 것이 타인에게는 절대적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가 들은 요한복음에서 율법학자와 예수님의 입장이 대조되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대한 회고를 통해 회개의 중요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묵상해보는 이 사순시기를 통해, 다함께 인간적이고 자비로운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우리의 근원에 대해 상기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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