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6일 사순 제4주일
예전에 어느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학생들인 저희에게 그러셨습니다.
"여러분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누구인지 압니까? 그것은 일생토록 책 한권만 읽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더욱 무서운 사람은 누구인지 압니까? 그 책 한권을 50번 읽은 사람이, 50권의 책을 읽은 사람보다 더욱 더 무섭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깊이 공감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여러 종류의 문제에 대해 해석을 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는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 해석에 있어서 다면적일 수도 있고, 또 일면적일 수도 있습니다. 위의 말이 강조하는 바는, 그 일면성이 깊이 고정되어서 다른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을 모르거나 배제하는 그런 편협함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렘브란트, 잃었던 아들의 비유 |
잃었던 아들의 비유, 렘브란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며 오늘의 복음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여기서 보면 아버지의 손이 두 종류의 손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오른손은 여성의 손, 왼손은 남성의 손입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에게는 모성과 부성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작가는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사용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따스이 품어내는 어머니의 모습과 계도해야 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동시에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소한 일면적인 하느님이 아니시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죄라는 결실과 아들이라는 인간의 측면에서 어느 하나만 강조하는 모습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큰아들도, 바리사이도 모두 하나만 강조하려고 했던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시 우리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되는 길로 가고 있지는 않는지요? 나의 생각이나 판단이 가장 우선하지는 않는지요? 그리고 우리도 한권의 책만을 50번씩 읽은 그런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인물이 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지 않습니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격언처럼, 우리는 적어도 다면적인 사고방식을 키우려고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신앙은 우리의 사고방식을 유연하게 하며,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자유와 능력을 가르쳐 주고자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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