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17일 사순 제1주간 수요일
루카 11,29-32
루카 11,29-32
최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던 시리아의 '팔미라'라는 유적도시가 송두리째 파괴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우리 모두 안타까워한 기억이 있습니다. 이 도시는 성경학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도시인데, 이스라엘을 둘러 싸고 있었던 나라인 아시리아(Assyria)라는 이방국가가 통치하던 시절에 세운 도시로서, 고대 인류문명의 자취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그런 보물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종교적인 이유, 혹은 경제적인 이유에서 이 도시가 점령당하고 파괴되었습니다. 그 이유인 즉, 자기들이 보기에는 그런 모든 것들이 우상숭배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유적들에 다이너마이트도 설치하고, 해머로 부수기도 하는 동영상을 유투브에 공개하기도 하였습니다. 정말 기가 막히는 사건들이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다른 사실에 대해 지극히 배타적이고 귀를 막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의 시선에서 볼 때에 오류라고 생각되는 것은 과감하게 처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기가 막히는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팔미라 유적지가 오늘 루카복음에 나오는 니네베 사람들에 대한 요나의 표징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니네베 혹은 니느웨 사람들이란 바로 이 팔미라와 인근 도시에 살았던 민족명을 지칭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요나는 하느님이 택하신 예언자였으므로, 만약 요나가 주변 이방국가에 사는 니네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메신저로서, 표징으로서 하느님을 드러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니네베 사람들은 야훼 하느님을 직접적으로 믿지는 않았지만, 그들 또한 신에 대한 흠숭의식이 강했기 때문에 요나를 통해 야훼 하느님을 믿게 되었고, 자신들이 믿는 신들로부터 절대적인 야훼 하느님으로 돌아섰다는, 회개하였다는 의미를 지칭합니다. 적어도 니네베 사람들은 귀막힌 이들이 아니었다는 점을 부각시켜줍니다.
동시에 이는 예수님께서 비교하는 믿지 않는 세대들의 요구와 대조됩니다. 그들은 니네베 사람들처럼 귀를 열지도 않는 사람들이었고, 표징과 근거와 기적만 요구하는 그런 기막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 어떠한 기적도 역설적으로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하는 행동들이 정말 기막힌 사건들로 인식이 되었을 것이라고 예수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사순시기에 우리가 듣는 이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반대로 귀를 열고 기, 즉 마음도 열라는 호소를 듣습니다. 교회로부터, 말씀으로부터, 하느님으로부터 그런 요청을 받습니다. 동시에 차라리 배타적인 태도를 취해야한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죄악의 유혹과 표징에 대한 유혹을 배타적으로 대하라는 그런 요구도 받게 됩니다. 미온적인 자세로는 결코 신앙이 발전하지 않는다는 자명한 논리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미온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으면서 기적만 바라고 있거나, 책임이나 삶의 자세는 바꾸지 않는 그런 귀막힌 이들이라면, 주님께서도 우리를 기막힌 사람들로 인식하시고 더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고자 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더 귀와 기(氣)를 열고 있어야 하리라고 믿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오늘의 복음과 사순시기는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인식하고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루카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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