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10일 재의 수요일
마태 6,1-6,16-18
살아가면서 우리가 자신에게 묻는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생의 목표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적과 목표가 뚜렷한 삶일 때에, 오늘의 가치가 더욱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순시기, 즉 부활의 기쁨을 더욱 더 크게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이 시기에, 교회는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의 목표가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제시되는 마태오복음을 한 문장으로 줄인다면 이렇게 될 것입니다: "믿는 이들아, 그대들은 위인이 되려고 하지 말고, 의인이 되려고 하라."
마태오복음은 주로 유다이즘에서 갓 넘어온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교육하기 위해 작성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서들보다 '의로움'과 '위대함' 상호간의 대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하느님의 율법과 그 율법준수를 통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해 다시금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인이 되는 길은 분명합니다. 많은 업적을 남겨야 하겠고, 그것을 사람들이 많이 알 수 있도록 널리 알려야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 사람을 세세대대로 칭송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위인이 되는 길입니다. 다만, 위인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언제나 위인으로 남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존재합니다.
반면, 이와 대조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의인이 되라고 하십니다. 우선, 굳은 믿음을 가지는 그런 사람이 되라고 하시고, 하느님께서는 숨은 것들도 꿰뚫어보실 수 있는 그런 '절대자'라는 믿음을 강건하게 갖고 있으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도 하고, 골방에 들어가서 아버지 하느님만 아실 수 있는 기도와 정성을 바치라고 하십니다. 그런 식으로 진정한 '신앙의 의인'이 되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항상 대조적인 길을 제시하고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위인이 되는 길이 훨씬 간편합니다. 그러나 경험해보면, 그렇게 위인이 되는 길로 가는 것만이 결코 항상 좋은 결과를 낳지 않는다는 것도 동시에 발견합니다. 그래서 다시금 의인의 길을 걷는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고자 노력합니다.
사순시기는 다시 한번 찾아왔습니다. 매해 다가오고 반복되는 이런 시기에서, 우리는 어떤 목표를 갖고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의인이 되려고 희망하는지, 위인이 되려고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감사한 것은 위인이 되어서 의인이 되려는 것보다, 의인이 되려고 하다보니 자연스레 위인이 되었다는 주님의 섭리입니다. 마지막 날에는 재가 되고 흙이 될 우리의 인생이라는 점을 미리 앞당겨 생각해볼 때에, 우리는 위인이 되려고 애쓰기 보다는 의인이 되려고 먼저 애쓸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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