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3일 점심식사를 할 무렵에, 저와 다른 학생형제들끼리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이미 두번의 검은 연기, 즉 선거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세번째 투표인 저녁에는 아마도 새 교황님이 당선될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녁도 거스른채로 인도네시아 형제 한명과 함께 베드로광장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랬더니 마침내 굴뚝에서 흰 연기가 솟아올랐습니다. 그러면서 추기경단의 부수석 추기경인 장 루이 토랑(종교간대화위원회 의장 추기경)께서 프랑스어 발음으로 라틴어로 이렇게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아베무스 파팜! (새 교황님을 우리가 얻게 되었습니다.) .... 카르디날렘 산탐 에클레시암 로마남 베르골리오.... 프란치스쿰!"
거기서 저는 마지막, '프란치스쿰', 그러니까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로 정한다는 발언을 들었을 때, 이제 드디어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이 온 세상에 드러나게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나아가 그 프란치스코가 프란치스칸 형제자매들의 영적 아버지이신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라는 것을 재확인하였을 때에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더욱이 그렇게 프란치스코로 명명하실 수 있도록 옆에서 영감을 주었던 분이, 브라질 은퇴추기경이시고 전 성직자성 장관이시면서, 우리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소속 추기경이신 클라우디오 후메스(His Em. Cardinal Claudio Hummes, OFM) 추기경님이셨습니다. 또한 이분에게 주어진 성당이 바로 제가 있는 안토니아눔 수도원의 바실리카이기에 너무나 의미가 깊었습니다.
이렇게 널리 알려진 이름인 '프란치스코'는 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요?
Franciscus라고 라틴어로 표기하는 이 이름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합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어머니는 이름이 피카(Pica) 부인이었습니다. 이분은 원래가 프랑스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 베드로 베르나르도네와의 사이에서 출생한 아들을, '작은 프랑스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남성형 의인화 어미를 써서 'Franciscus'라고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스페인어로는 Francisco, 이태리어로는 Francesco, 프랑스어로는 François, 영어로는 Francis라고 표기하고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매님들을 위해서는 어미를 여성형 어미인 '-a'로 변형하여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숨어있습니다. 바로 프랑스라는 나라의 이름 속에 그 비밀이 있다는 것입니다. 라틴어로 Francia (발음: 프란치아 혹은 프란시아)라는 말이 현재의 프랑스 국호를 지칭하는데, 이 단어에는 'land of Frank'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이 'Frank'라는 말은 어느 이론에 따르면, 고대 게르만어 계열에서 유래했으며 뜻이 '자유로운(Free)'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당대 군주가 자기네 영토에서는 노예처럼 일하는 것을 금지하고, 현재의 이념처럼 'Liberté, Egalité, Fraternité' (자유, 평등, 형제애라는 현 프랑스의 국가이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프랑스라는 나라를 La France라고 지칭할 때에, 프랑스인들의 멘탈 속에는 항상 '자유'가 자동적으로 그려지게 됩니다.
따라서 어디 특정한 개념이나 범주 안에 속박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로서 'Francia' 즉, 프랑스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작은 프랑스 사내라는 'Franciscus'라는 이름 안에도, 역시 '자유'롭게 사고하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그런 의미가 내포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전기를 읽어보면 그는 기존의 여러 개념이나 전통에 처음에는 속해서 출세를 꿈꾸다가, 이후에는 주님께 순종하면서 기존 고정관념에서 '자유'롭게 행동하는 인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유가 그저 단독의 판단과 사고로 인한 그런 '방종'과 유사한 자유가 아니라, 함께 어울리고, 평등해지며, 형제애를 나누는 그런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속한 공동체가 진정 하느님과 모든 사람들이 함께 그려볼만한 그런 '공동체;가 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바로 자신이 지닌 '자유분방함'으로 인하였고, 그렇게 자유분방함을 통하여 주님의 자비와 사랑의 위대함을 무한하게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이태리 토스카나 출신의 탐험가인 아메리고 베스푸치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던 아메리카 대륙에, 콜럼버스를 비롯한 스페인 무적함대 등에 승선해서 미주대륙에 복음을 선포한 프란치스칸 성인인 성 주니페로 세라, 그리고 이어지는 많은 스페인 계열의 프란치스칸 선교사 형제들에 의해, San Francisco, San Antonio, San Diego 등의 도시들이 프란치스칸 성인들의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미국은 '자유의 나라'이고, 자유를 중시하는 나라입니다. 프랑스 또한 자신들의 기원을 그대로 기억하면서 살아가려고 하며, 여전히 자유, 평등, 형제애(박애)라는 국가 이념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지닌 이들, 그리고 '프란치스칸'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저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영성'은 바로 '자유'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갖는 것입니다.
신앙에서 말하는 자유란, 하느님의 도움에 의해 여러 영적 장애물(선입견, 고정관념, 질투와 죄악들 등등)로부터 해방되어, 우리가 가기로 되어 있는 올바른 인생길을 적극적으로 걸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하느님이 원하시는 인생을 적극적이고 책임감 있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설령 여러 고난이 따른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뚫고 나갈 용기와 능력도 주신다는 믿음을 갖고 계속 전진하는 것이 바로 '자유'입니다. 결코 타인을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것이 아니며, 함께 하는 평등과 형제애를 전제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길을 열어나가서,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더욱 더 활기차게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이 바로 '프란치스코의 사람들', '프란치스칸'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이름의 '영성'을 깊이 새기면서 '자유로우면서도 자비롭게' 삶을 살아가야 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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