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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알면 재미있다 4] 왜 '사마리아 사람'이 착한 사람의 전형(典型)으로 등장한 것일까요?

루카복음 10장 25~37절까지 나오는 이야기는 그 유명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생명의 위기를 겪는 이를 보고도 그저 지나간 사람들과 달리, 사마리아 사람만은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여관에 묵게 하여 사람을 살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이 진정한 선인(善人)의 표본이라고 여겨진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런 복음의 이야기로부터 인해, 누구든지 응급상황에 놓인 사람을 보고 도울 원칙을 두고, Samaritan Rule이라고 지칭합니다. 

그런데 한번쯤 자세히 호기심을 갖고 살펴볼 대목이 있습니다. 왜 '사마리아' 사람이 착한 사람의 대명사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유다인도, 이집트인도 아닌 왜 '사마리아' 사람이어야 하는 것일까요? 그들은 누구였으며, 왜 그들이 한 일이 놀라운 일로 복음서에는 기록된 것일까요? 왜 요한복음에서는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샘물을 건넨 것이 정말로 놀라운 일이며, 그것이 나중에는 주님 자신을 계시하시는 대목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일까요? 과연 이 '사마리아'에 대해 우리는 얼만큼 알고 있는 것일까요?

이런 호기심이 어린 질문을 갖고 한번쯤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 과연 '사마리아'는 어떤 곳인지, 그들의 배경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마리아 지역 위치도
위의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사마리아 지역은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북쪽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요르단강의 수원에 해당되는 갈릴래아 호수와 하류에 해당되는 사해의 중간지역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이는 과거, 40년의 유랑생활 이후 정착한 땅에서, 판관기를 거치고 사무엘을 거친 후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라는 2개의 왕정체제를 겪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북이스라엘의 영토에 해당되었던 도시입니다. 그렇지만, 예루살렘이 항상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수도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이 사마리아는 주목을 받을만한 도시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스라엘 민족이 기원전 722년에 이웃국가인 아시리아라는 왕국에 의해 점령당하고, 그 백성들은 유배로 포로생활을 하게 됩니다. 반면 이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 유배로 인해 포로생활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서 유배생활을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가 달라지게 됩니다. 주로 유배생활을 한 부류들은 유다인들로 구성되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사마리아 지역의 사람들이었기에 '사마리아인들'로 분류가 됩니다.

다윗왕으로 인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이 2 왕정국가가 하나의 통일국가가 되었고, 이는 솔로몬국왕에 이르러 황금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런 황금기에 솔로몬국왕은 예루살렘을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수도로 삼고자, 예루살렘에 최초의 성전(First Temple)을 건설합니다. 왜냐하면 기존의 방랑생활동안에는 이동식 텐트 안에다가, 계약의 궤(Ark of Covenant)를 모셔놓고 그곳에서 야훼 하느님께 대한 경신례(Divine Cult)를 진행하였기에 굉장한 서러움을 간직하였습니다. 이제는 태평성대에 굳건한 영토를 확보한 단계에서, 아주 상징적이고 의미심장한 성전건설을 이룩하였고, 마침내는 솔로몬국왕의 큰 업적으로 자리매김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심장과도 같은 성전이 기원전 722년의 바빌론유배로 인해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 노예살이 다음으로 한번 더 포로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반면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노예살이도 포로생활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계속해서 살았던 것입니다. 바빌론 유배가 끝난 기원전 538년경에 유다인들이 자기들의 영토로 돌아왔을 때에, 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자기들의 동료나 이웃으로 전혀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자신들과 완전히 다른 민족, 이민족들로 차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다인들이 자신들의 민족적 심장인 성전을 재건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하였지만, 유다인들은 고통을 함께 겪지 않은 이들을 자신들의 성전재건에 참여할 수 없다는 식으로 거부하였습니다. 그렇게 감정의 골은 깊어 갔습니다. 그렇게 되어서 마침내는 유다인들이 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단'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또한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북쪽으로 40여킬로미터에 떨어진 게리짐산(Mount Gerizim)에 자신들만의 성전을 건설하기에 이릅니다. 그렇게 해서 마치 양강구도처럼, 서로가 자신들이 이스라엘 조상들의 직통후손들이라고 주장하면서 서로 갈등의 구조 안에 놓이게 됩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그들을 이단의 후손이라고 여기고,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다인들을 오만한 사람들로 여기게 되는 그런 증오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증오의 맥락이 역사적으로 자리하던 가운데, 예수님이 등장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샘물을 떠 달라고 부탁하십니다. (요한복음 4장) 그리고 율법학자도, 유다인도 그냥 다 지나가는데, 사마리아 사람만은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루카복음 10장) 그럼 이것들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원래 '사마리아 사람들'은 누구든지 그 상대를 '동일한 사람으로 보고 도우려고 하는 의지'를 보인 이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도 동일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단지 역사적인 해석과 민족적인 증오감으로 인해 갈린 것일 뿐이지, 사실 따지고 보면 누구나 같은 인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박애주의적이고 휴머니즘적인 노선을 재고해 보라고 하면서, 그 복음서를 주로 읽었을 유대교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권고하였던 것입니다. 그만큼 그리스도교는 원래가 '박애주의'와 '휴머니즘'으로 가득한 종교라는 것을 피력하고자, 이 '사마리아' 사람을 하나의 대명사요 소재로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런 사마리아 사람의 노선을 걷는 단체나 개인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반면에 여전히 증오와 선입견으로 모든 것을 대하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 대한민국 국내를 보아도 그렇고, 국제사회를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념이나 감정의 틀을 걷어내고, 대상 그 자체의 성격을 투명하게 인식하려는 자세가 어느 때보다 더욱 더 요구되는데도 불구하고, 복음은 그것을 피력하고자 애쓰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듣기보다 본인의 관념을 더 신뢰하는 경향이 다소나마 존재합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들이라는 대명사는 비단 응급한 누군가를 인간적으로 돕는 경우에만 해당될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누군가를 선입견없이, 증오감 없이 순수하게 동료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지칭하는 아주 적합한 대명사라는 점을 잘 기억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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