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6일 복음묵상
네 권의 복음서 가운데 유독 마르코 복음 만은 예수님의 기적사화를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고, 물 위를 걸으시는 등등 수많은 기적을 행하시는 그런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대비해서 제자들은 그런 기적이 왜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대비되어 그려지고 있습니다.
복음서 네 권의 일반적인 경향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우선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을 "스승"으로 그립니다. 그러면서 그분의 가르침을 알아듣고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길 희망합니다. 혹은 이미 그리스도인들이 된 유대교 출신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를 잘 알게 하려는 목적에서 예수님을 "스승"으로 묘사하고자 합니다.
마르코 복음은 반면 예수님이 "하느님의 외아들"이라는 점을 제1전제로 삼고 출발합니다. 그러다보니, 그분이 인간의 모습을 지녔다는 점은 베일에 불과하다고 믿습니다. 결정적인 그분의 부활로 인해, 그 베일이 벗겨지면서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시란 사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선상에서 그분이 행하시는 여러 기적사화들도,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시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구도를 그렇게 잡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임을 믿고 깨닫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시나리오가 생겼습니다.
루카복음은 그 반대로 "사람의 아들"이라는 호칭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집니다. 역설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이방인들에게, 이런 이런 스토리를 겪으면서 성장하고 수난하고 부활한 예수라는 인물이 있었다고 알리고자 하였습니다. 동시에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감으로써, 역설적으로 그 안에 있는 하느님의 능력을 독자 혹은 청자들이 믿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서들보다 탄생이야기, 성장이야기 등등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접근합니다. 세상의 창조 이전부터 존재하던 진리의 "말씀"이라는 시각으로 접근합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계셨던 분의 인간화라는 점에 대해 주목하면서, 우리가 그분을 어떻게 바라보고 믿는 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도록 이끄는 그런 특징을 지닌 복음서입니다. 어느 복음서보다도 예수님의 자기 계시(1인칭)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주는 복음서라고 하고, '영적인, 신앙의' 복음서라고 지칭합니다.
이런 경향들을 참조한다면, 오늘 나타나는 물 위를 걸으신 기적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지니는 권능과 사랑에 대해 강조하기 위해 기록되었다는 목적성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그런 권능과 사랑에 대해 의구심과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과의 거리감을 느꼈을 법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직접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물 위를 걸어서 파도를 잠재우시고, 제자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주시는 모습을 본다면 느끼는 교훈이 하나가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멀어지려고 하지, 하느님이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멀어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완고한 마음을 가졌다는 표현이 복음서에 등장하는데, 그것은 곧 우리가 거리감을 느끼고 멀리하려는 마음이 들 때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멀리 하려고 하지만 주님은 가까이만 다가오려고 하십니다.
우리가 불안하고 두렵고 하느님을 멀리하고자 할 때, 인생이 힘들어서 멀리하고자 할 때에도 언제 어디서든지 이렇게 말씀을 건네시는 주님의 구원의지를 묵상해봅시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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