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20일 연중 제2주간 수요일
마르 3,1-6
마르 3,1-6
한 분의 절대자를 섬기는 여러 종교들을 일컫어 계시종교라고 합니다. 절대자가 진리를 직접 사람들에게 드러내서 가르친다고 해서 계시종교라고 합니다. 이런 계시종교들 가운데, 그리스도교는 아주 특이한 계시종교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더욱 깊이 들어가면 그 배경에는 '신인동형상론(anthropomorphism)'이라는 사상이 깔려 있습니다. 아주 어렵게 들리는 이 말은, 간단하게 말해서 신이 인간과 동일한 형상을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신이라고 해서 인간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히려 신의 모습 안에는 현재 우리의 인간적인 모습이 이미 있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해도 우리의 모습 안에는 신의 모습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장선 상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imago Dei, image of God)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손'과 오그라든 이의 '손'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둘 다 귀한 '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오그라든 '손'을 다시 펴주고자 기적을 행하십니다. 거기에 반대하는 자의 '손'은 지적을 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왜 그런 일을 우리가 규정한 안식일에 하느냐고 말입니다. 같은 '손'인데 다른 측면에서 사용됩니다. 위축되고 병들어서 외면받는 이의 오그라든 '손', 그리고 그런 사람을 측은하게 여기는 예수님께서 내미시는 기적의 '손', 이런 상황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반대와 지적을 하기 위해 사용될 '손'. 이렇게 같은 '손'이지만 서로 다른 상황에서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복음의 의미를 더 심화한다면, 과연 우리의 두 '손'은 어디에 사용되고 있습니까? 혹시 우리 자신이 위축되어 오그라든 '손'을 갖고서, 누구에게도 말을 건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아니면 누군가를 반대하고 비판하기 위해서 '손'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혹은 예수님처럼 도움이 필요하거나 소외된 이들에게 뻗치는 '손'이 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손을 뻗어라.” (마르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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