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16일 토요일
마르 2,13-17
마르 2,13-17
은퇴하신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 지난 2007년 1월 31일에 하신 일반알현에서 큰 박수갈채와 공감을 얻었던 말씀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제게 큰 위안을 줍니다. 성인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듯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기 때문입니다. 성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고 죄도 지닌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앙이란 점진적인 인격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핵심을 이야기해주신 것입니다. 그것도 하느님의 은총이 계속해서 믿는 이들을 동반하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완성을 향해 정진할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여 줍니다.
우리는 흔히 '완벽함'과 '완전함'을 곡해할 때가 있습니다. 완벽한 것은 전혀 결점이 없고 모든 것이 언제 어디서나 다 갖춰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빠질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를 두고 말합니다. 반면, '완전한' 것이라고 하면 그 자체로 온전하게 '존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소 흠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완벽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완전하게' 존재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복음에서 '올바름'과 '죄인들'을 두고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과 논쟁을 펼칩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율법계명을 '완벽하게' 준수하여서 어떤 흠이 없는 그런 '올바른' 사람이 하느님과 가까이할 자격을 갖춘다고 믿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눈으로 볼 때에는, 그런 흠이 없는 '완벽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온전하면서도 '완전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 더욱 우선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죄라는 '흠'이 생긴 이들이었지만, 그들의 생명만큼은 '완전한' 것이었기에 주님은 '완성시킬 수 있는' 여지를 주셨던 것입니다.
성인들도 죄인이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위안을 줍니다. 또한 동시에 그리스도교는 점진적은 완성을 중시한다는 사실도 우리에게 위안을 줍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계속되는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나의 '완벽한' 변화가 아니라 주님의 영감으로 '충만해지는' 변화를 계속해서 경험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스어 복음텍스트를 찾아보면, 여기에서 완전하다는 말은 단수명사로 τέλος, 영어로 perfection, accomplishment가 됩니다, 그러면 여기에는 목표를 달성해서 얻은 성과물들, '목적을 갖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꾸준히 일한다' 그런 의미가 포함됩니다. 동시에 계속해서 이뤄지는 노력과 과정이라는 점도 함께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오늘의 복음에서 말하는 '올바름과 완전함', 그리고 아래의 성경말씀을 깊이 이해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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