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에 유명한 에피소드가 바로 갈릴레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시몬과 안드레아 형제를 예수님께서 즉석으로 캐스팅하신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을 보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시면서 '나를 따르라'고 이야기하십니다. 그렇게 하여서 12명의 사람들이 이른바 '사도'가 되어서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분의 일을 거들게 됩니다. 동시에 자기들도 여러 광경들을 목격하면서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르코복음에 보면 자주 '제자'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그럴 때에 한번쯤 물어볼 수 있습니다. 과연 '사도'라는 개념과 '제자'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그리고 서로 차이가 있으면서 어떤 관계성을 지니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제자'와 '사도'라는 호칭이 차이가 있으면서, 예수님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인식하는가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우선, 예수님을 '스승'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참되고 완전한 스승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교사요 스승인 예수께서 가르침도 주시고, 몸소 모범을 보이시며 하느님의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그럴 때에 '제자'가 등장하여, 그분과 가까운 친밀감을 느끼고 그분 곁에서 항상 '배우려고 하는' 이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스승'을 가까이 모시면서 '배워나가려고' 하는 이를 두고 제자(Disciple)로 호칭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메시아, 구원자'로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성부 하느님께서 직접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어, 당신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바로 깨닫게 하고자 의도하실 수 있으며,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인식한다면, 그분의 사명을 함께 수행하기 위해 보내주시는 곳은 어디든지 가서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그들을 두고 바로 '사도(Apostle)'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어 원어를 보아도 '아포스텔로'라는 동사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보내다'라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되는 이가 보내는 사람을 두고 '사도'라고 하고, '사도'는 보낸 이의 뜻을 그대로 행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보낸 이의 현존을 알리는 차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존재와 사명을 공유하게 됩니다.
그럼 '제자'가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궁극적으로는 '사도'가 되는 길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을 우리 삶의 참된 '스승'으로 인식하고, 그분의 '제자'가 되어야하겠다는 결심이 공고할 때부터 이미 '사도'가 되는 길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바로 신앙이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단순히 예수님을 스승이요 교사정도로만 인식하는 것에서 그치지않고, 그분을 하느님으로 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것이 우리 스스로가 예수님과 교회의 '사도'가 되겠다는 결의를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복음의 핵심가치인 하느님과 이웃사랑을 널리 펼쳐나가는 그런 주님의 '사도'가 될 수 있습니다.
"나를 따르라" (마르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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