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30일 복음묵상
요즘 우리는 루카복음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루카복음을 스케치하는 그 저자의 펜촉에서,
'예수 그리스도, 사람의 아들이면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믿음이 자세히 그려집니다.
루카복음을 두고 성경학계에서는 그리스 문화만을 알고 있는 이가 전적으로 복음을 기술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복음서들과는 다르게 유다이즘이나 기존 전통으로 독립하여,
그리스도교 믿음 그 자체가 지니는 성격을 담담하면서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리스 철학에서 중시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차원에서,
다른 복음서들보다도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모를 구체적으로 기술합니다.
그래서 유년기 이야기나 성모님께서 잉태하신 이야기 등등 일반적인 사람들이 겪는 그런 탄생 순서대로
예수님 또한 다를 바가 없는 그런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저와 같이 기술합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거나 그치지 않습니다. 시메온 예언자, 한나 예언자, 사도들을 주연으로 등장시켜
끊임없이 그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고 계시하게 만드는 구조를 구축합니다.
여느 일일연속극에서 조연들이 계속해서 출생의 비밀과 그의 정체성을 암시하고 고백하듯이,
주변인물들을 통해서 겉으로는 여느 사내아이처럼 동일한 인간이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하느님의
동일한 본성과 능력을 가지는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면 점을 계속해서 부각시키고, 독자들이 그것을
믿고 깨닫게 합니다. 유대인들에 대한 사전배경지식을 가지지 않는 그리스도교 교우도, 자신과 동일한
사람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공감할만한 소재로부터 함께 출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리스도 중심주의적 감수성에서 해석하면서, 보이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점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측면으로 '넘어가도록' 이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윤리적이고 순례자처럼 감수성으로 바라본다면, 우리가 교리나 지식을 갖지 않는다고 해도
예수도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라는 점에서부터 새롭게 출발하자는 것이고, 그런 인간적인 교회공동체에서
그분의 가르침을 새기면서 생활하면 어느새 나도 하느님의 아드님의 모습을 닮아있는,
생생하면서도 초연할 수 있는 관조적인 삶의 태도를 지닐 희망을 보게 됩니다. 바로 거기에
우리의 구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우리는 주님을 찬미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해뜨기 전부터 해질녁까지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요즘 우리는 루카복음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루카복음을 스케치하는 그 저자의 펜촉에서,
'예수 그리스도, 사람의 아들이면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믿음이 자세히 그려집니다.
루카복음을 두고 성경학계에서는 그리스 문화만을 알고 있는 이가 전적으로 복음을 기술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복음서들과는 다르게 유다이즘이나 기존 전통으로 독립하여,
그리스도교 믿음 그 자체가 지니는 성격을 담담하면서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리스 철학에서 중시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차원에서,
다른 복음서들보다도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모를 구체적으로 기술합니다.
그래서 유년기 이야기나 성모님께서 잉태하신 이야기 등등 일반적인 사람들이 겪는 그런 탄생 순서대로
예수님 또한 다를 바가 없는 그런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저와 같이 기술합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거나 그치지 않습니다. 시메온 예언자, 한나 예언자, 사도들을 주연으로 등장시켜
끊임없이 그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고 계시하게 만드는 구조를 구축합니다.
여느 일일연속극에서 조연들이 계속해서 출생의 비밀과 그의 정체성을 암시하고 고백하듯이,
주변인물들을 통해서 겉으로는 여느 사내아이처럼 동일한 인간이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하느님의
동일한 본성과 능력을 가지는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면 점을 계속해서 부각시키고, 독자들이 그것을
믿고 깨닫게 합니다. 유대인들에 대한 사전배경지식을 가지지 않는 그리스도교 교우도, 자신과 동일한
사람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공감할만한 소재로부터 함께 출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리스도 중심주의적 감수성에서 해석하면서, 보이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점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측면으로 '넘어가도록' 이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윤리적이고 순례자처럼 감수성으로 바라본다면, 우리가 교리나 지식을 갖지 않는다고 해도
예수도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라는 점에서부터 새롭게 출발하자는 것이고, 그런 인간적인 교회공동체에서
그분의 가르침을 새기면서 생활하면 어느새 나도 하느님의 아드님의 모습을 닮아있는,
생생하면서도 초연할 수 있는 관조적인 삶의 태도를 지닐 희망을 보게 됩니다. 바로 거기에
우리의 구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우리는 주님을 찬미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해뜨기 전부터 해질녁까지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만난 성 스테파노 주교좌 성당>
제가 읽고 이해 하기에 좀 난해해서 몇 번 다시 읽어 보아야 겠어요.
답글삭제신부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