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9일 화요일 복음묵상
루카 2,22-25
오늘 복음에서는 빛에 대한 묵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빛과 어두움의 대조는 성경에서는 주로 윤리적인 대조를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됩니다.
그래서 어느 길로 선택해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 독자나 청자들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기
위하여 이런 대조를 보여줍니다.
새로운 길을 '비추어' 새로운 '인생길'을 열어준다는 것이기도 하겠습니다.
또한 빛은 조명을 이야기합니다.
플라톤 계열의 철학에서 인간의 인식은 '절대적 이데아로부터의 조명'을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한계를 지니고, 다른 초월적 절대존재로부터
그 빛을 받지 않으면, 모든 것을 다 인식할 수 없다는 방식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교도 일면 이 사조를 수용하면서 갱신하여서,
"모든 지혜와 지식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비춰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과 신앙의 지혜와 지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미사전례나 개인기도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를 비추어주시고 인도하여 주소서."
유다이즘의 배경 속에서, 절대자 하느님이 무엇인가를 조명해준다는 것도,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도 발견되지 않는 와중에, 유다이즘의 시메온과 한나라는 두 예언자가
'사람의 아들'이 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두고 "빛"에 비유하며 해설하는 의미는,
(1) 우리 곁에 함께 계시면서 동반하신다는 임마누엘 주 예수 그리스도께,
(2)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어려움과 어두움을 비추어주시고 인도해달라고 간청하라는 것,
(3) 그리하여 언제나 선택의 자유와 갈림길에서 주님을 따르는 길을 선택하라는 것
이런 교훈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삶으로 가득하길.
루카 2,22-25
오늘 복음에서는 빛에 대한 묵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빛과 어두움의 대조는 성경에서는 주로 윤리적인 대조를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됩니다.
그래서 어느 길로 선택해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 독자나 청자들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기
위하여 이런 대조를 보여줍니다.
새로운 길을 '비추어' 새로운 '인생길'을 열어준다는 것이기도 하겠습니다.
또한 빛은 조명을 이야기합니다.
플라톤 계열의 철학에서 인간의 인식은 '절대적 이데아로부터의 조명'을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한계를 지니고, 다른 초월적 절대존재로부터
그 빛을 받지 않으면, 모든 것을 다 인식할 수 없다는 방식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교도 일면 이 사조를 수용하면서 갱신하여서,
"모든 지혜와 지식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비춰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과 신앙의 지혜와 지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미사전례나 개인기도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를 비추어주시고 인도하여 주소서."
유다이즘의 배경 속에서, 절대자 하느님이 무엇인가를 조명해준다는 것도,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도 발견되지 않는 와중에, 유다이즘의 시메온과 한나라는 두 예언자가
'사람의 아들'이 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두고 "빛"에 비유하며 해설하는 의미는,
(1) 우리 곁에 함께 계시면서 동반하신다는 임마누엘 주 예수 그리스도께,
(2)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어려움과 어두움을 비추어주시고 인도해달라고 간청하라는 것,
(3) 그리하여 언제나 선택의 자유와 갈림길에서 주님을 따르는 길을 선택하라는 것
이런 교훈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삶으로 가득하길.
빛의 의미가
답글삭제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는 저의 기도가
되게 하소서. 아멘.
올려주신 글을 읽으면서 1독서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답글삭제읽은 내용 중에 “나는 그분을 안다", 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 장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라는 말씀이 크게 와 닫네요.
이 말씀 뒤에 이어지는 말씀도 참 좋은 기억하고 싶은 말씀입니다.
분심 들지 않고 조용할 때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