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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019의 게시물 표시

이제 카카오톡 플러스에서도 저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국내와 해외에 계신 가톨릭 한인신자들을 위해, 영적인 갈증해소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드리고자, 이렇게 카카오톡에서도 저를 만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친구찾기를 통해 추가도 하실 수 있고,  성경과 영성강의, 실시간 라이브 등도 계획중이오니, 많은 분들과 카카오톡을 통해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지금 바로 친구추가하세요~^_^ 감사합니다.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64] 세례명 '비오'(Pio), 비아(Pia)에 담긴 영성은 무엇일까요?

성 교황 비오 10세(1835~1914) 8월 21일 오늘은 성 교황 비오 10세 기념일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원래 이태리어 이름은 주세페 멜키오레 사르토(Giuseppe Melchiorre Sarto)이며, 이태리 북부 리에세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 조반니 바티스타 사르토의 집안은 매우 가난하였습니다. 가난한 가정의 둘째로 태어난 주세페는 후에 교황으로 선출되고 나서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나는 가난하게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가난하게 살았으며, 가난하게 죽을 것입니다." 이 교황 비오 10세를 기억할 때에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어린이들이 자주 성체를 영할 것을 권면하셨던 분으로 기억됩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의 첫 영성체 나이를 앞당기셨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예수님께 대한 충심이 가득하셨으며, 특별히 로마 병사들에 둘러싸여 고난을 받으시던 예수님께 대한 충성심이 강하였습니다.  우연의 일치일 지도 모르지만, 그분의 교황직 산간에 정말로 유럽사회와 교회에는 크나큰 고난들이 많았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이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1903년에 교황에 당선되셨는데, 11주년 기념해이던 1914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세계가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또한 교회도 철학적으로 근대주의와 합리주의적 철학적 기조를 통해 교회의 믿음이 우리 인간 이성에 정합적으로 부합되지 않는다라고 폄하하던 차원이었습니다. 그렇게 교황 비오 10세는 당대의 여러 고난들과 핍박하는 환경에 휩싸여서, 고난받는 예수님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오 교황님은 1905년 만국 공통의 "성 비오 10세의 교리문답"을 편찬하여 가톨릭 신앙교육에도 전념하셨습니다. 또한 당대 페루의 원주민들이 프랑스에 의해 핍박받고 있을 때, 단호하게 프랑스와 교황청 간의 협약도 거부하셨습니다. 이태리 메시나의 지진이 생겨서, 피난민들이 갈 곳을 못찾았을 때 자비

[신간안내] 제가 번역한 첫 책, "당신은 지금 무엇을 청하는지 아십니까"가 현재 판매중입니다.

프란치스코출판사, 2019년 7월 15일 2쇄 발행, 정가 8000원 마태오 무나리 신부 지음, 박희전 루케시오 옮김 구입문의: 프란치스코출판사 02-6325-5500 이메일주문: franciscanpress@hanmail.net 5권 이상 주문시 택배비 무료(CJ택배) 교보문고, 알라딘, 반디앤루니스 서점과 가톨릭출판사, 바오로딸, 성바오로, 분도출판사, 성서와함께 등 가톨릭계 서점에서도 온오프라인 모두 구매문의 하실 수 있습니다. 도서 소개 『당신은 지금 무엇을 청하는지 아십니까』는 ‘주님의 기도’에서 깨닫는 그리스도인의 기도 영성 책입니다. 그리스도교 기도문들 가운데 가장 제일 많이 바치는 기도가 아마도 주님의 기도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도문 속의 청원들 각각의 고유한 깊이에 대해 대중적으로 저술한 책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이 때문에 예루살렘 프란치스칸 성서연구소(SBF) 신약성서학 교수이자, 마태오복음 전문가인 마태오 무나리 OFM 신부가 지은 소책자입니다. 이 책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를 바치는 가운데, 진정으로 그 기도문 행간에 숨은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에 좋은 책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기도를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대중적인 책입니다. 더 나아가 여기에 영감을 받아, 그리스도인은 어떻게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도 영성도 더불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두 그룹의 청원(하느님 청원, 우리 청원)으로 분류하여 각각 3가지씩 총 6가지의 청원으로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청원 속에 담긴 기도 지향을 밝혀내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기도가 막연하게 다가오거나 피상적으로 느껴지는 분들, 그리고 주님의 기도를 그냥 외우기만 하던 교우들이 이 책의 도움을 받고, 앞으로 주님의 기도를 바치실 때마다 아버지 하느님과의 정감 있는 교제가 더욱 깊어지는 방향을 안내합니다. 마지막에는 주님의 기도를 길게 풀어놓은 기도문을 수록하고 있어서, 그 기도문을 참조하여 주님의 기도를 바칠 수 있기에 도움이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63] 세례명 '베다'에 담긴 영성은 무엇일까요?

성 베다 존자(St. Bede the Venerable) 작년 로마에서 학위논문을 쓰면서 만난 초세기 성서주석가 가운데 뛰어난 분이 바로 이 영국의 성 베다 존자(Venerable)입니다. 베다 성인은 교회로부터 공경과 존경을 받을만한 학덕과 성덕이 충만했기 때문에, 교회가 성인에 덧붙여 '존자'라는 호칭을 함께 쓰고 있습니다.  7세기, 그러니까 초기 중세시대의 대표적인 성서학자가 바로 이 베다 성인입니다. 이 성인은 672년부터 735년까지 살았던 유일한 초세기 영국 성인입니다. 그가 유명해졌던 이유는 일생 동안 기도하고 노동하며 단순하게 살면서, 겸손하면서도 뛰어난 학식을 당대 전 유럽사람들에게 제공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초기 중세시대가 영적으로 풍요로워졌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그가 다른 이들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그 가운데 하나로 바로 그의 이름에 주목해 보고자 합니다. 그가 지닌 이름인 베다는 Beda입니다. 영어로는 Bede(비드)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Bede는 고대 영어 Bed에서 유래한 것으로 파악이 됩니다. Bed는 그 뜻이 "prayer"이며, 그 뜻은 바로 "기도"입니다. 그리하여 베다라는 이름 속에 담긴 영성은 바로 "기도의 영성"입니다. 즉, 베다라는 세례명을 사용하는 이들은 늘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베다 존자가 그렇게 삶을 살아 왔듯이, 누구든지 베다라는 이름을 지닌 사람은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기도하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의 가장 근원적인 어원은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하였는데, 그 뜻이 바로 '절대자에게 질문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고, 앞으로 어떻게 걸어가야 하고, 무엇이 당신 마음에 드는지 등등 우리 보다 더 탁월한 지혜와 능력을 지닌 절대자에게 질문하는 행위를 두고 기도라고 하였습니다.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62] 세례명 '콜베'의 이름 속에 담긴 영성은 무엇일까요?

누구나 죄를 지으면 감옥에 가야 합니다. 그것은 인류역사상 불변의 정의요 진리였습니다. 그런데 만약 어느 누군가 죄도 없으면서 감옥에 가야 한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더욱이 거악에 맞서려다가 감옥에 투옥이 된다면 어떻게 바라보시겠습니까? 그것은 되려 진리가 더욱 커보이게 하려는 작은 항거가 아닐까요? 사람이 몰골만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곧바로 사람 구실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형상으로 태어났다고 해도 악마의 하수인으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사 안에서 참혹한 독재자들과 그들의 대학살이 있었다는 점에서, 또한 선과 악이 혼재하는, 아직 완전한 선의 승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사람 구실을 즉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죄악으로부터 하느님의 권능으로 해방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해방되어서 사랑으로 발걸음을 이동시키지 않는다면 곧바로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든지 악의 유혹에 빠져들어서 커다란 죄를 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좋으신 분이시며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그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다른 인생여정을 걸어가도록 미리 안배하셨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분이 바로 우리의 성모 마리아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원죄 조차도 물들지 않도록 성부 하느님께서 안배하셨고, 그래서 좋으신 아버지께서는 우리 죄많은 자녀들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를 통해 깨끗하게 목욕시켜서 어여쁜 자녀가 되도록 제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인 성녀들이 모두다 한마음으로 이 성모님을 깊이 사랑하며, 성모님의 영광을 드높여서 삼위일체의 존엄이 빛나도록 제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에 접속하는 가장 안전하고 완전한 지름길이 되셨습니다.  바로 이 안전하고 완전한 구원과 사랑의 표지들로 성인 성녀들이 우리에게 세워졌습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 현대에 우리에게 가장 대표적인 순교자이자 프란치스칸이었던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61] 세례명 '룻(Ruth)'에 담긴 영성은 무엇일까요?

구약성경은 주로 가족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당연한 것이 계약의 아버지인 아브라함과 그 후손의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이며, 신약에서는 신앙의 후손인 우리 자신들을 다루기 때문에 가족 이야기는 성경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가운데 구약성경의 룻기는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왜냐하면 룻(Ruth)이라는 여인은 유다인이 아닌 이방인이며 결혼하여 유다인인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가 경제적인 이유로 이주를 해야할 때, 자신에게 자유롭게 고향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하였으나 자발적으로 시어머니인 나오미(Naomi)와 함께 끝까지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며느리됨의 하나의 표상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서 이 룻은 그렇게까지 며느리들의 표상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녀의 이름 속에 담긴 뜻이 그녀를 비춰준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그 이름 속에 담긴 뜻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룻(Ruth)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רְעוּת (르우트)에서 기원하였습니다. 우리가 들어 아는 12지파의 르우벤(Reuben)이라는 이름도 다 같은 어원에서 나왔습니다. רְעוּ(러우)라는 히브리어가 '친한'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러우'로 시작되는 뜻은 아주 가까운 관계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룻(Ruth)이라는 말은 '친밀감을 간직한 여인'이 됩니다. 그 상대가 하느님일 수도 있고, 주위에 있는 여러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룻'이라는 이름 속에 담겨 있는 뜻은 '친밀하며 다정다감'입니다. 특별히 가톨릭대사전에서는 이 '룻기'의 문학적 의의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누구든 자기 의무에 충실하고 하느님의 보호에 의지하면 하느님이 상급을 주시며 바로 이런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이끄신다는 것과 따라서 모든 것이 잘 끝나게 해 주신다는 것을 표명하는 것이 이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60] 세례명 '베르나르도(Bernard)'와 '베르나뎃다(Bernadette)'에 담긴 뜻은 무엇일까요?

다가오는 8월 20일은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입니다. 클뤼니 수도원의 베르나르도 성인은 자신이 지녔던 깊고 깊은 성모신심으로 인하여, 당대의 혼탁했던 교회를 쇄신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지은 '동정 성모께 대한 찬가' 속에서 마리아의 '피앗'이 지녔던 깊은 뜻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당신께 우리 구원의 대가를 주고자 하십니다. 당신이 승낙하시기만 한다면 우리는 즉시 해방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영원한 말씀 안에서 창조되었지만 슬프게도 지금 죽음에 매여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짧은 응답으로 인해 회복되고 다시금 생명에로 부름 받을 것입니다. 인자하신 동정녀여, 낙원에서 추방당한 아담과 그의 비참한 후손들이 당신께 이것을 애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다윗도, 죽음의 어두운 골짜기에 거하는 조상들, 바로 당신의 조상들도 이것을 애원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당신 발 앞에 엎드려 이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의 응답에 비참한 이들의 위로와 갇힌 이들의 구속과 저주받은 이들의 해방과 아담의 모든 자손들 곧 온 인류의 구원이 달려 있습니다. 동정녀여, 속히 응답하소서. 천사에게 속히 응답하시고 천사를 통해서 하느님께 응답하소서. “말”을 하시고 하느님의 “말씀”을 잉태하소서. 일시적인 “말”을 하시고 영원한 “말씀”을 받으소서. " 이렇게 마리아께서는 당신의 '피앗'이라는 말로 '말씀을 잉태하셨고, 일시적인 '말'로 영원한 '말씀'과 늘 항상 함께 하시는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께 대한 깊은 신심으로 인하여,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시토회의 개혁을 이뤘고, 혼탁해졌던 중세 베네딕토회 수도승원들의 개혁도 이뤄냈습니다. 이렇게 큰 일을 이뤄낸 베르나르도 아빠스는 어떻게 해서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가 지녔던 이름의 뜻에서부터 단초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59] 세례명 '라자로' 속에 담긴 영성은 무엇일까요?

“ 라자로 야, 이리 나와라.” (요한 11,43)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던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던 라자로가 이 말씀에 의해 무덤에서 부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부활은 예수님 부활의 전주곡(prelude)와 같은 표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라자로는 그 이후부터 죽음이나 그 어떤 어두움도 주님의 사랑의 권능으로 우리를 회복시키신다는 믿음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라자로와 유사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라도 예수님 사랑의 권능을 신뢰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던 듯하게 되살아날 수 있는 희망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그럼 과연 이 라자로라는 이름 속에 담긴 뜻이 어떻게 회복의 영성과 연결되는 것일까요? 그 이름에 담긴 뜻을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라자로Lazaro라는 이름은 원래 라틴어 원형이 라자루스Lazarus입니다. 그리고 이 라자루스는 원래가 히브리어 엘레아자르Eleazar와 연관된 것입니다. 이 히브리어는 אֶלְעָזָר 이고 그 뜻은 '나의 하느님께서 도우셨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라자로라는 이름 속에는 '야훼 하느님께서 나의 하느님이시며, 그분께서 직접 나를 도우셨다'는 신앙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 영성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라자로는 믿음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믿는 이라면 주님께서 직접 회복을 도와주신다는 점입니다. 부서진 신뢰와 관계도, 자신의 무너진 자존감도, 가족들과 격리된 고립감도 그렇게 회복할 수 있다는 점을 믿게 됩니다. 라자로는 그렇게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라, 잠시 잠들어 있었던 것이며, 잠시 무의식에 빠져 있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라자로를 세례명으로 쓰는 사람은 자신이 하느님 도움의 증거자요 직접적 수혜자임을 증언해야 합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회복을 원하신다는 점도 알게 될 것입니다. 회개는 우리가 창조되었을 때의 아름다움을 회복하는 것이며, 설령 잠들거나 파괴되었다고 해도 주님께서 도와주시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