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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18의 게시물 표시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54] 세례명 '크리스토퍼/크리스/크리스티나'에 담긴 영성은 무엇일까요?

크리스토퍼 리브 전 세계적으로 누구나 다 아는 영화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맨' 시리즈입니다. 스파이더맨, 배트맨...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으뜸인 영화는 바로 '슈퍼맨'이 되겠습니다. 이 슈퍼맨의 주연을 맡았던 남자 배우는 이름이 크리스토퍼 리브 (Christopher Reeve)라는 배우입니다. 그는 힘든 무명시절도 겪었고, 한때는 영양실조까지 걸렸을 정도로 궁핍했던 시절을 겪은 그런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젊은 배우에게 수퍼맨이라는 영화는 그의 인생을 완전히 180도 바꿔 놓았습니다.  그가 수퍼맨에 출연한 이후, 크리스토퍼 자신이 바로 세상의 수퍼맨이 되었습니다. 항상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러 나타나는 그런 사람의 대명사, 그리고 힘이 없고 약한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남성을 두고 수퍼맨, 여성을 두고 수퍼우먼이라고 하는 대명사가 생겨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만큼 그의 영화와 그의 출현으로 많은 것들이 바뀌게 되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불행히도 승마경기 도중에 낙마하여 전신마비라는 중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승마경험이 많은 그였지만, 말에서 떨어져서 입은 상흔은 쉽게 낫지 않았고 그에게 남은 인생을 거의 식물인간의 상태에서 살아가야 하도록 만들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기회를 통해 이 세상의 진정한 '수퍼맨'이 되도록 결심하였습니다. 크리스토퍼 리브 재단을 설립하여 자신과 같이 평생 마비증상으로 고통을 받아야 하는 이들을 돕는 일에 헌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영원히 수퍼맨으로 남을 것으로 사람들이 기대했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2004년 10월 10일에 또 다른 세상으로 떠나버렸습니다. 비록 그가 떠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크리스토퍼 리브를 기억하며 수퍼맨으로서 항상 희망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해주었던 그를 영원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런 크리스토퍼를 바라보면서 참으로 놀랍고도 숨겨진 신앙의 진리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의 복음묵상] 언제나 긍정과 희망에 가득찬 신앙인의 인생여정

다해 대림 제2주일 제1독서: 바룩 5,1-9; 제2독서 필리 1,4-6.8-11; 복음: 루카 3,1-6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대림 제2주일을 맞이하면서 다시 한번 묵상해 볼 주제는 바로 그리스도교 구원의 기본원리입니다. 바로 무엇이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이끄는 것인지에 대한 고찰입니다. 제1독서에서 바룩서는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지켜야할 가장 기본원칙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거룩한 믿음을 견고하고 간직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수퍼파워이신 하느님께 대한 유일신론적인 의지입니다. 그분께서는 진정 전능하시고, 자애로우시고, 또 항상 우리 인생의 고단함을 위로해주실 줄 아는 그런 지혜로운 분이십니다. 그것을 진정 믿는 것입니다. 시련의 시기가 있었지만, 그 시기에 부르짖었던 탄원을 하느님께서 들으시고 도와주셨다는 것을 믿고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구원된 민족들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순환고리가 생기게 됩니다. 시편 118편 26절 말씀처럼,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께서는 찬미 받으소서! 우리는 주님의 집에서 너희에게 축복하노라."라고 목청껏 소리 높여 외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항상 시편 86편 16절의 말씀처럼, "그러나 주님, 당신께서는 자비로우시고 은총이 넘치는 하느님,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시니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야훼중심적인 믿음에서 희망의 싹이 움트게 될 수 있습니다. 시편 126편 5절의 말씀처럼, "눈물로 씨뿌리던 자들이 기쁨으로 거두리이다."라는 믿음과 희망으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일단 우리 구원은 희망으로, 그것도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진실이 넘치는 하느님께 거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는 원리를 다시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제2독서에서는 이것을 좀 더 심화시켜서 우리를 사람의 아들의 모습으로 오신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53] 세례명 '히야친토/히야친타'에 담긴 영성은 무엇일까요?

R.I.P. Jacek Oniszczuk, SJ (1966.07.06~2017.12.22)  2018년 1월 새해를 기뻐하며 즐기는 가운데 저는 개인적으로 불행한 뉴스를 접하였습니다. 제가 다니던 그레고리오 대학교의 성서신학부 학부장 야첵 오니주크 (Jacek Oniszczuck, SJ) 신부님께서 성탄절 방학에 이태리측 알프스 지역으로 트랙킹을 나가셨다가, 급작스러운 눈사태로 선종하셨다는 이야기었습니다. 성서신학부 학생들 모두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그분이 가장 젊고 유능한 요한복음 교수이기도 하셨고, 젊은 나이에 학부장도 맡을 정도로 미래가 밝은 젊은 폴란드 예수회원이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허망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성서신학 박사학위를 가진 이라도,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을 수 밖에 없는 나약한 한 인간이라는 점이 다시금 각인되는 그런 슬픈 시간이었습니다. 그분과 깊은 대화나 그분의 요한복음 주석수업을 들어보지 않았던 저로서는, 한편으로는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봄이 와서 장례미사를 함께 드렸고, 다시금 그분을 추모하면서 모든 학생들이 다시금 성서신학 과정에 충실하고자 하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모든 동료 교수 신부님들과 수녀님들도 그분을 수업시간 가운데 추모하곤 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공교롭게도 그분의 이름인 이 야첵 (Jacek)이라는 이름이 지닌 기원적 의미가, 그분의 그런 생애와 맞닿아 있음을 다시금 보게 되었습니다.  이 야첵이라는 이름은 폴란드어이고, 원래의 언어는 그리스어입니다. 그리스어로  ὑάκινθος (히야킨토스, 남성명사) 에 해당되며, 이를 라틴알파벳화한 이름이 Hyacinth 혹은 Jacinth가 됩니다.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에서는 Jacinto (하신토)라고 부르고, 폴란드어에서는 Jacek (야첵)이라고 하며, 이태리어에서는 Giacinto (지아친토)라고 부릅니다.  히야신스 (Hyacinth Orientalis) 이 이름은 봄에 피는 여러

[오늘의 복음묵상] 몸의 자유, 마음의 평화

대림 제1주일 (다해, 루카 21,25-28.34-36) 찬미 예수님, 오늘은 대림 제1주일입니다. 다시금 새롭게 아기의 형상으로 오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부디 올해에도 우리 자신을 잘 준비시켜서 올바르게 성탄을 맞이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도록 합시다.  오늘의 묵상주제는 예수님의 강생과 더불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제1독서의 예레미아서의 말씀에서는 고난이 불가피하지만, 고난으로서 멸망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보여줍니다. 예레미야 예언자가 활동할 당시에는 정치적으로 바빌론 치하에 들어가는 그런 유배시기였습니다. 그렇다보니 당연히 남유다 왕국은 자유를 잃어가고 있었고, 희망도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의 몸도 마음도 자유롭고 평화롭지 못하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야훼 하느님의 예언에만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구원의 때가 다시 다가오면 다윗의 후손으로부터 새롭게 정의의 싹이 움터올 것이라고 말입니다. 고난이 올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고난으로 결코 모든 것이 멸망하지 않는다는 구세주 대망론이 이때부터 싹이 트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몸과 마음이 그저 희망을 고대할 뿐이었지, 완전히 자유롭고 평화롭지 못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제2독서의 테살로니카 1서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마음부터 준비시킵니다. 고난은 역시나 늘 함께 하고 있습니다. 몸의 고난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은 이전의 예레미야 예언서 시절이나 바오로 사도의 시절이나 동일합니다. 다만,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시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아멘." (1테살 3,13) 그래서 이미 강생하신 주님을 알고 믿었던 테살로니카 신자들이 겪었던 마음이 나약해짐을 두고 바오로 사도가 이렇게 권고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53] 세례명 '제르투르다' (젤뚜르다)가 지닌 뜻은 무엇일까요?

성녀 제르투르다 (St. Gertrude the Great) 13세기 독일 베네딕토 수녀원에 입회하였던 성녀 제르투르다는 예수님 발현 체험을 한 이후에 신비가로서 많은 기록을 남긴 성녀입니다. 그리하여 그녀가 남긴 여러 기록 가운데 오늘날까지 자주 회자되는 것이 바로 그녀가 남긴 미사전후의 기도문입니다.  영원하신 아버지! 저는 오늘 세계 방방곡곡에서 드려지는 미사와 일치하여 당신 성자 예수님의 지극히 고귀하신 피를 연옥에 있는 거룩한 영혼들을 위해, 도처에 있는 죄인들을 위해서 전 세계의 교회 안에 있는 죄인들, 저희 가정에 그리고 저의 가족 중에 있는 죄인들을 위해서 바칩니다. 시프 (Sif) 이 기도문은 바칠 때마다 연옥의 죄인들과 지상의 죄인들이 1000명씩 죄의 상태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란 예수님의 약속에 기반한 기도라고 합니다. 그렇게 그녀는 모든 영혼들이 연옥에서나 지상에서나 강건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였던 성녀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녀는 이런 사도직에 자신의 소명을 느꼈던 것일까요? 거기에 바로 그녀의 이름이 지니는 영성이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독일어로 Gertrude입니다. 이 이름을 두 부분으로 분할하면 Ger+Thrud입니다. 독일어가 노르딕 언어군 (북유럽)에 속하는 언어군인데,  고대 언어에서는 trude가 Þrúðr에 해당된다고 하며, 이는 북유럽 신화에서 토르(Thor)와 그의 아내 시프 (Sif) 사이에 태어난 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딸인 '트루드'라는 이름이 지니는 뜻은 'Strength' 즉 '강인함, 용기, 힘'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독일어 남성명사로써 Ger은 'Spear' (창)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두 부분을 합쳐서 종합하자면, Gertrude라는 이름의 뜻은 'Spear of Strength'라고 합니다. 즉, 한국어로 하자면 '강인함을 보여주는 창&#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52] 세례명 '마르가리타'는 어떤 뜻을 지니는 것일까요?

마가렛 미첼 우리에게는 너무나 유명한 흑백영화로 알려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좌측에 보이는 미국 애틀란타 출신의 소설사 마가렛 미첼 (1900년 11월 8일~1949년 8월 16일)에 의해 지어졌습니다. 이 영화는 흑백인종분리주의에 대한 각성을 암시하는 영화로 대단히 큰 반향을 일으킨 영화였습니다. 특히 이 소설을 쓴 마가렛의 성장과정이 이 소설을 쓰는 일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처음에는 애틀란타 워싱턴 신학교를 졸업하고, 스미스 대학의 의대에 진학하였다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서 전사한 육군 장교 헨리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도 당시 유행했던 독감으로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련의 연속을 경험하면서도 최종적으로는 유일무이한 자신의 소설 작품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통해, 사회이슈였던 흑인노예차별문제에 대해 커다란 물음표를 제시하였습니다. 비록 영화에서는 많이 필터링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녀의 고귀한 작품은 여전히 세계명작으로 남이있습니다. 그녀의 삶의 궤적과 '마가렛'이라는 그녀의 '이름' 사이에는 신비하게도 '영성적인 연관성'이 숨어있습니다. 과연 어떤 관련성을 지니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Margaret입니다. 그리고 이 마가렛이라는 영어 이름의 어원을 그리스어에서 찾아보면,  μαργαρίτης (마르가리테스, 남성명사) 입니다. 이 명사의 뜻은 바로 'pearl'(진주)입니다. 그리고 이 마가렛이라는 이름의 여러 변화형태를 살펴보면, Maggie (매기)라고 부르기도 하고, 이태리어로는 Margherita (마르게리타)입니다. 마르게리타 피자가 마르게리타 여왕 시절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마르게리타 피자라고 하며, 현재도 피자계의 '진주'로 전세계에 통용되고 있습니다.  진주의 형성과정을 다시 한번 살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