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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16의 게시물 표시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28] 세례명 '루치오, 루치아'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나는 세상의 빛이다'(Ego Sum Lux Mundi),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그리스도교에서 자주 예수님을 두고 '빛'으로 표현합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을 주로 라틴어로 lux로 표현합니다. 또한 동시에 신학에서는 라틴어로 교회를 두고 Lumen Gentium, 즉 '인류의 빛'으로 표현합니다. 이 Lux와 Lumen 사이의 차이점에서부터, 오늘 알아보고자 하는 '루치오, 루치아' (남 Lucio, 여 Lucia)의 영성이 도출됩니다. 전자인 Lux란, 우리말로 하면 '광원' (光源)이 됩니다. 그래서 '빛이 시작되는 지점'을 두고 '룩스'라고 합니다. 흔히 실내나 실내의 조도를 측정할 때에, 이 '룩스'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는데, 그것은 어원을 생각하면, 그 장소를 비추는 '빛'이 얼마만큼 발출(發出)되었는가를 의미합니다. 그만큼 빛이 시작되어서 그 장소를 그 시점에서 채우고 있는가를 의미하게 되겠지요. 후자인 Lumen이란, 우리말로 하면 '광선' (光線)이 됩니다. 그래서 '빛줄기'가 되겠고, 이미 결과로 나온 상태를 의미합니다. 광원으로부터 뿜어져나온 그 광선이기에, 광선은 광원이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영어 동사가운데 illuminate (비추다, 조명하다)라는 단어도, 결국 특정한 '광원'으로부터 나온 '광선'에 의해서 환하게 '조명을 받는다'는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라는 '광원'에 의한 것이라면 그 '조명'은 '영적 조명, 즉 계시'라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루치오/루치아는 어느 단어로부터 기원한 것일까요? 당연하게도 전자인 'Lux'에서 기원한 이름입니다. 로마시대에 자주 사용한 이름이었다고 합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27] 세례명 '모니카'에는 어떤 뜻이 숨어있는 것일까요?

성녀 모니카 앞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이름의 뜻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실과 바늘처럼 따라오는 것이 바로 그의 어머니 '모니카' 성녀입니다. 이 모니카 성녀의 이름에 담긴 어원적 의미와 영성적 고찰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거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니카라는 이름의 정확한 기원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다만 유력한 가능성은 2가지라고 제시합니다. 첫째는 라틴어 동사 Moneo, "to advise" (권고하다)라는 동사로부터 파생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현명한 의견을 주는 여인'이라는 뜻을 간직하게 됩니다. 또한 그리스어 Monos "one", (단일한, 하나의)라는 형용사로부터 기인한다고 해서, '유일한 여인'이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간주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서 그런 두 가지 개연성을 종합하여서 이름을 해석한다면, '현명한 의견을 주는 유일한 여인'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이름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조력자, 자문위원이 되는 여인이 바로 '모니카'라는 이름에 걸맞는 인품을 보여주는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도 그러했습니다. 아우구스티노가 자신의 아들로서 하느님을 모르고 이단인 마니교에 심취하여 주님을 멀리하고 있었을 때에, 그의 회두를 '권면한 유일한 여인'으로 항상 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이 위대한 그리스도교 성인이 하느님 사랑에 전심전력할 수 있도록 '권고한 유일한 여인'으로 지금까지 공경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모니카라는 세례명을 사용하는 이는 누구나, 힘들어 하거나 방황하거나 하느님을 믿지 않으려고 하는 이들 '곁에서 현명한 지혜의 말을 건네주는 유일한 여인'이 되도록 애써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하느님께 다시 돌아오고, 자신의 일상을 올바르게 고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26] 세례명 '아우구스티노'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아주 많이 사용되는 세례명이 바로 '아우구스티노'입니다. 앞서 안셀모 성인이 '하느님을 위한 투구, 변호자'라는 의미였다고 한다면,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이 아우구스티노라는 이름은 무슨 의미를 간직한 것일까요? 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의 최초 황제의 이름은 바로 Augustus입니다. 8월을 뜻하는 영어 August의 어원이 되기도 하는, 이 로마 황제의 이름은 라틴어 동사인 augere라는 이름으로부터 유래 하였다고 합니다. 이 동사의 의미는 'to increase' 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증가시키다, 늘리다'라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로마제국의 최초 황제는 옥타비아누스였는데, 그에게 공식적으로 주어진 '타이틀'이 바로 아우구스투스 황제였습니다. 공식적인 명칭이 바로 '아우구스투스' 황제라는 점이었습니다. 이를 그가 로마의 최초 황제라는 점에서 해석을 시도한다면, 최초에 건립된 로마제국이 그 영향력과 영토를 '늘리도록 기여하는' 황제가 되라는 기원을 담은 이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로마제국은 동서로 그 영토와 영향력을 확장시켜 나감으로써 세계사에서 가장 큰 대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이런 영향에서 태어난 그리스도교는 321년 콘스탄티노플 칙령을 통해 최초로 공식 국교로 채택되었고, 이후에 그리스도교는 엄청난 양적성당을 거듭합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그것이 국가의 통치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교회 본연의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에는 다소 제약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누르시아 출신의 베네딕토라는 이가 창립한 베네딕토회 공주(共住) 수도승원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5세기 경에 이른바 마니교에 심취하였던 이교도가 그의 어머니의 기도를 통해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25] 세례명 '안셀모'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진 것일까요?

성 안셀모 주교 학자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가장 유명한 성인 두 명을 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안셀모 성인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두 분이 신학이라는 학문에서 아주 기념비적인 학설을 제시하셨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하느님은 사랑이신 분이란 점을 아주 강력하게 제시하였고, 우리는 그에 비하면 회개해야 하는 죄인이라는 점도 강력하게 남겼습니다. 더욱이 안셀모 성인은 하느님을 정의하길, 하느님은 '더 이상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존재'라고 하면서 하느님을 직관적인 믿음으로부터 연역해서 그분의 존재증명을 해낸 분입니다. 이렇게 해서 두 성인에 의해 하느님은 더 없이 크신 사랑이시며, 그런 사랑 이상으로는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는 절대자라는 믿음이 공식화되었습니다. 동시에 그런 하느님에 비한다면 우리들의 존재는 죄인에 불과하다는 점을 각인시켜 주셨습니다.   이 위대한 아우구스티노와 안셀모 성인, 이 두 성인의 이름 안에도 특별한 뜻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에 대해 차례로 살펴보도록 하되, 우선 안셀모 성인의 이름의 뜻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Anselm (영어식 표기)이라는 이름의 원형은 고대 게르만어에서 기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원래가 Ansehelm이라고 하는데, Ans는 그 뜻이 God (하느님), helm은 helmet, protection (헬멧, 보호자)라는 뜻을 지닌 두 단어의 합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안셀름이라는 이름은 '하느님을 보호하는 도구' 혹은 '하느님께서 보호하시는 사람, 도구'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간직한 이름인 것입니다.  이 영어식 표기가 이태리, 포르투칼, 스페인어에서는 Anselmo (안셀모), 여성형으로는 Anselma, Elma(독일어식 표기)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안셀모라는 표기법은 최소한 이태리어식을 따르고 있다고 판단하면 되겠습니다. 우리의 다른 세례명들이 주로 이태리어식 표기법을 따르고

[오늘의 복음묵상] 자비가 '자녀'를 만나는 그 순간

2016년 4월 3일 부활 제2주일 오늘은 1년 가운데 아주 특별한 주일입니다. 부활 제2주일이면서 하느님의 자비주일이라는 특별한 명칭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2000년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하느님의 자비심에 대한 신심이 투철했던, 폴란드의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수녀를 시성하시면서, 이 주일을 특별히 하느님의 자비주일로 명명하신 후부터 가톨릭교회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더욱이 올해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선포하신 자비의 해라는 특별희년이기 때문에, 자비의 해에 맞는 하느님의 자비주일은 더욱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됩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상징하는 단어는 구약에서는 rehem, 즉 자궁의 복수형인 rahamim(라하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깊은 의미를 생각해보면, 우리 자녀들의 모든 약점들과 상처들을 당신의 생명력으로 품어서 다 정화시켜주신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당신께서 부활하셨다는 점은 하느님 자비의 연장선 상에서 이해해야 비로소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홀로 내버려둘 수 없으셨기에, 끝까지 순종하여 십자가에 뭍히셨으며, 끝내 부활하셔서 승천하셨고, 성령을 보호자로 보내주시면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 믿는 자녀들과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해주시겠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애절하게 끓는 자비를 얼마만큼 느끼고자 갈망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 '자녀'이고, 당신이 우리를 항상 보살펴주시는 사랑이 '자비'라면, 자비는 항상 자녀를 만나려고 우리 곁에 늘 서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냉담하고 무심하게 그 자비를 관망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별 관심이 없는, 그 자비의 능력이 얼마나 깊고 크고 위대한지에 대해 생각해볼 여력조차 없이 지낼 수도 있습니다. 하루하루 다가오는 위기와 상처, 좌절과 분노, 절망과 슬픔 등등 감당해내기 힘든 일상의 시련들도 버거운데, 어떻게 주님의 사랑을 묵상하고만 있을 수 있냐면서 절규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게 우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