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74] 세례명 '암브로시오(Ambrosio)'에 담겨진 어원과 영성은 무엇일까요?

 

이탈리아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패션과 문화의 도시가 바로 밀라노(Milano)입니다. 지금도 이태리에서 제일 부유하면서도 문화적으로도 힘이 있는 도시가 바로 밀라노입니다. 그리고 밀라노의 꽃은 바로 두오모 디 밀라노(Duomo di Milano), 곧 밀라노대교구 주교좌성당입니다. 이 성당의 전례는 다른 도시와 다르게 암브로시오 전례를 따릅니다. 그 암브로시오는 오늘 우리가 살펴볼 성 암브로시오 주교를 뜻합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인 위대한 성 아우구스티노의 무덤도 밀라노에 있고, 최후의 만찬 성화로 유명한 벽화도 밀라노에 있는 도미니코회의 은총의 성모 수도원(Convento Santa Maria delle Grazie) 식당에 있습니다. 모든 것에서 융성했고, 지금도 그 맥을 이어가고 있는 밀라노는 암브로시오 성인이 있어 더욱더 불멸의 도시입니다. 


그러면 왜 밀라노대교구는 암브로시오 성인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일까요? 암브로시오 성인의 이름과 생애에서 그 단서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먼저 암브로시오라는 이름의 어원과 영성, 그리고 그 영성이 잘 드러났던 그의 생애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암브로시오라는 이름은 라틴어 암브로시우스Ambrosius에서 유래합니다. 그리고 이는 다시 그리스어에서 그 어원을 찾습니다. 그리스어 브로토스βροτός는 그 뜻이 ‘사멸하는(Mortal)’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부정접두사인 알파α를 덧붙여서, ‘불멸하는(immortal)’ 뜻을 지니게 됩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자면 암브로토스Ambrotos가 ‘불멸하는’ 이라는 뜻이지만, 암브로시오도 큰 차이가 없이 ‘불멸하는 이, 불멸하는 이들의 모임에 속한 이’라는 뜻으로 충분히 해석될 수 있기에 그렇게 풀이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의 생애가 ‘불멸의 업적을 남긴 하느님의 사람’이었나요? 이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그가 왜 밀라노의 상징이 되었는가 하면, 그는 법학을 전공하였는데 자기가 일하던 지방의 장관인 프로부스(Probus)의 추천에 의해 370년에 밀라노의 집정관(로마 공화정 때에, 행정과 군사를 맡아보는 장관을 말함)이 되었습니다. 그가 밀라노 집정관이었을 때에 당시 주교는 바로 아리우스주의자(성자가 성부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며, 성부에게 종속적이라며 삼위일체를 부정하였던 서방 로마 가톨릭의 대표적 이단)였던 아욱센티우스(Auxentius) 주교였습니다. 그가 사망하자, 아리우스주의자들과 정통 신앙주의자들 사이에 격렬한 대립이 밀라노에서 발생하였습니다. 집정관이었던 암브로시오는 신자들에게 평화적 방법으로 대화를 통해 화해를 추구하자고 역설하였습니다. 당시 비신자였던 암브로시오의 이런 연설과 접근이 의외로 정통 신앙주의자로부터 지지를 받음으로써, 그가 밀라노의 후임 주교로 선출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곧바로 세례를 받고, 8일 후인 373년 12월 7일에 주교품을 받게 되었습니다. 암브로시오가 밀라노대교구장이 된 이후에, 수많은 사람들이 개종하게 되었고, 여전히 아리우스주의와 여러 이단에 동조하는 이들을 다루는 문제와 정치적인 문제에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개입해야만 하였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문제에 봉착하였고, 자신이 주교직을 감당하기에 부당하다고 느꼈을 무렵에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행정과 법원으로부터 떠나서 주교직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이제 내가 한번도 배워보지 못한 것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해야만 하였다.” 이후부터 성경과 교부들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하였고,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준 후 엄격한 금욕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로마의 황제들은 지속적으로 암브로시오 주교에게 밀라노의 성당들을 아리우스주의자들에게 내놓을 것을 종용하였지만, 그는 성공적으로 불멸의 항쟁을 끝까지 전개하였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다음과 같은 행동 원칙에 따라 사목을 수행하였습니다. “교회 안에 황제가 있지, 교회 위에 황제가 있지 않다”며 교권이 세속 군주보다 더 상위에 있음을 천명하였습니다. 


그의 그런 불멸의 투쟁과 굳건한 신념에 충만한 설교가 387년 부활절에 성 아우구스티노를 마니교로부터 회개시켜 그로부터 세례를 받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밀라노 교회의 전례개혁을 단행하였고, 자신이 직접 지은 찬미가들과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한 여러 전례텍스트들을 추가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부터는 밀라노대교구의 전례는 암브로시오 전례라고 인식되었던 것입니다. 


397년 성 금요일에 암브로시오는 그의 두 팔을 벌려서 마치 수난과 부활의 십자가 모양을 하며 주님의 죽음에 동참하였습니다. 그의 유해는 암브로시오 성인 명의로 되어 있는 대성당에 묻혀 있습니다. 1298년에 교황 보니파시오 8세께서는 암브로시오 성인을 교회박사로 선포하셨고, 지금까지도 교부학이나 교회사에서 아주 큰 업적을 남긴 불멸의 성인으로, 서방 교회의 4대 교부 중 한 분으로 깊은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암브로시오 성인께서 여러 이단과 로마 황제의 압박 앞에서도 굳건한 신앙과 불멸의 수호정신을 지키셨기에, 오늘날 가톨릭교회가 유지, 보존되고 있음을 굳게 믿습니다. 부패하고 어려운 사회 속에서도,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태산같이 높았어도 절대로 그리스도교의 이상인 주님께 대한 항구하고 굳건한 신앙을 양보하거나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교회가 혼란 속에 휩싸여 있어 암담해 보일 때, 암브로시오 주교의 글과 영성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다시 다잡아야 하겠습니다. 


그를 무척이나 존경하였던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회고합니다. “하느님의 사람이신 암브로시오 성인은 여러 이단들에 맞서 아주 열정적이고 특별한 교회의 수호자이셨습니다. 여러 위험이 모든 것을 좌절시키고 있음에도, 그리스도의 용감한 용사요 교회의 충직한 스승이신 분이 암브로시오 성인이었습니다. 저는 그분을 저의 아버지처럼 공경합니다. 그분께서는 제게 세례를 주심으로 저를 그리스도 안에 살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분이 지닌 가톨릭신앙에 대한 사랑으로 살았고, 그분의 담대한 용기와 그분의 고통들과 그분이 설교와 사목활동 가운데 그분에게 가해졌던 여러 위협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신앙과 교회와 그리스도를 본질적으로 깊이 사랑했던 암브로시오 성인을 통해 오늘날 바람처럼, 연기처럼 흩날려 버리는 우리의 신앙을 반추해 보도록 합시다. 


“만약 교회에 황금이 있다면, 교회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존재합니다.” 

(성 암브로시오)

댓글

댓글 쓰기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11] 세례명 '글라라'에는 어떤 뜻이 담겨져 있을까요?

아씨시 성녀 글라라 대성당 지하에 모셔진 글라라 성녀 유해 앞에서 프란치스코란 이름의 영성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 안에는 '자유'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프란치스코와 항상 함께 등장하는 이름이 바로 '글라라'입니다. 아씨시의 성녀 글라라, 성 글라라 봉쇄수도원의 창립자, 전세계에서 가장 큰 여성봉쇄수도원을 지칭하는 성 글라라 수도원의 최초의 영적 어머니, 이 글라라란 이름의 뜻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란치스코도 그러했듯이, 글라라라는 이름도 라틴어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12~13세기 중세의 인물이었기 때문에, 구약의 히브리어나 신약의 그리스어가 아닌 대중적인 라틴어로부터 이름을 따왔던 것입니다. 라틴어로 보면, 이 글라라는 철자가 Clara입니다. 이는 남성형용사 Clarus의 여성형입니다. 그래서 Clara입니다. 다시 이 형용사의 뜻을 살펴보면, 'transparent, clear"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라틴어 Clara가 스페인어로 와서는 그대로 Clara라고 표기합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이 계란의 흰자 부분을 두고 'clara'라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투명함이 백색으로도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태리어로는 Chiara (끼아라), 프랑스어로는 Clare (끌레르), 영어로 Clare (클레어)로 표기하고 발음합니다. 독일어로는 Klara라고 하고, 참고로 독일어에서는 '설명'이라는 명사가 Erklärung이라고 하여서, 상대를 두고 명료하게 만드는 것을 두고 '설명'이라고 정의하는 독일어식 뉘앙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현대의 국문표준법상, 우리나라의 첫 음절은 ㅋ, ㅌ, ㅍ 등은 그보다 약한 소리인 ㄱ, ㄷ, ㅂ로 표기하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클라라'가 되겠지만, 한국표준법에 따라서 '글라라'가 됩니다. 같은 경우로 Petrus,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29] 세례명 '율리오/율리아' 혹은 '율리안나 (율리아나)'에는 어떤 뜻이 숨어있는 것일까요?

루카복음 20장 25절의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루카복음 20장 25절 말씀 형상화 "카이사라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이것은 바칠 것이 있다면 그 원래의 주인에게 '되돌려드리는' 정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당시 세금논쟁을 예수님과 벌이고자 하였던 로마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사실 그 카이사르의 것도 주님의 것이기는 하지만, 카이사르가 가져야할 몫을 부정하지는 않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의무에 대해 긍정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신앙적으로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도로 바치는 마음가짐이 요구된다는 점을 부각시킬 때에 많이 회자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이름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로마 공화정 시대에 실존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입니다. 이 '카이사르'라는 말은 로마 시대의 통치자, 황제를 지칭하는 호칭이었기에, 그 이름을 지닌 사람에게는 막강한 권력이 주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바로 이 '율리우스(Julius)'라는 라틴어로 된 남성의 이름입니다. 원래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신은 바로 제우스 (Zeus) 신입니다. 그리고 로마신화로 넘어오면, 그 신은 바로 주피터 신(Jupiter)이 됩니다. 그래서 '율리우스(Julius)'라는 이름은 바로 이 신중의 신, 왕중의 왕인 주피터 신에게 자신을 봉헌한, 자신의 모든 것을 도로 바친 남성을 두고 '율리우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여성의 이름을 바로 율리안나(율리아나, 쥴리엔, Julien)으로 표기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의 최고신인 '주피터' 신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도로 바친 사람으로서, 로마공화정의 최고의 통치자로 역할을 하였던 사람입니다. 또한 반대로 '주피터' 신이 그를 통해 모든 권능을 부여한 사람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38] 세례명 '소피아' (Sophia)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을까요?

프랑스 여배우 소피 마르소 제가 어린 시절에 문방구에 가서 물건을 살 때면, 항상 저보다 더 나이가 많았던 형들이 그 문방구에서 옆의 소피 마르소의 사진으로 코팅이 된 책받침을 많이 사가는 것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만큼 미모가 출중하고 많은 이들의 여신으로 추앙받을 만하였기 때문이겠지요. 옆의 사진이 근래의 사진이라고 하며, 어린 시절의 전설의 사진들을 검색하여 보면, 지금 여느 아이돌을 능가할 정도의 미모를 가진 여인으로 나타납니다. 정말로 대단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배우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이름을 프랑스어로 표기하면 Sophie Marceau가 됩니다. 프랑스어식 발음으로 '소퓌 마~르소'가 되겠구요. 특별히 그녀의 이름인 이 'Sophie'는 서양에서는 아주 많은 이름이고, 이것은 우리가 살펴볼 '소피아'의 프랑스어식 변형이라는 점을 알아두면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이 이름은, 영어로는 Sophie라고 해서 불어식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고, 그리스어나 독일어에서는 Sophia라고 하며, 그리고 러시아어 등의 슬라브어 계열에서는 Sofia 혹은 Sonia(소냐)라고 합니다. 그래서 슬라브계열의 여성 이름들 가운데 소냐가 많은 경우가 있는데, 이 'Sonia(Sonya)', 즉 '소냐'라는 이름은 모두가 Sophia, 즉 소피아라는 이름의 변형이라는 점을 알아두는 것도 흥미로울 것입니다. 그럼 이 소피아 혹은 소냐라는 이름이 지니는 뜻은 무엇일까요? 원래 이 이름은 그리스에서 기원한 것입니다.  Σοφια (Greek)라고 하는 여성명사에서 기원이 되었는데, '소피아'라고 읽고 그 뜻은 '지혜' (智慧,wisdom)입니다. 원래 이 소피아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철학에서 자주 등장하던 단어입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파르메니데스 등 고대 그리스철학자들이 그렇게 갈구하던 단어이고, 서로 저마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