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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44] 세례명 '예로니모'에는 어떤 영성이 담겨져 있을까요?

성 예로니모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 -성 예로니모-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의사전달과 공유에 있을 것입니다. 이 전달과 공유라는 것이 바로 영어로 말하는 Communication입니다. 이 단어의 원래 라틴어 동사인 Communicare는, '함께'라는 뜻을 주로 지니는 접두사 'con', 그리고 '일, 직무'를 이야기하는 명사 'munus'가 합쳐진 합성어입니다. 뒤에 따라오는 접미사 '~icare'는 동사화시키는 접미사입니다. 그래서 결국, '함께 직무를 가지게 되다'라는 뜻에서 'Communicare'가 되고, 이것의 명사화가 바로 'Communicatio'가 됩니다.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것이지요. 함께 직무를 맡게 된다는 것은, 같은 배경을 이해하고, 같은 정서를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협업을 아주 쉽게 이룰 수 있다는 상황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한지에 대한 여부가 되겠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려면, 동일한 언어사용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어휘들을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은 통하지만 뜻은 통하지 않는 상황이 등장할 수 있어서 상당히 큰 어려움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차원이든, 종교적인 차원이든 관계없이 서로간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이해가능한 동일언어사용은 참으로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의 '예로니모' 성인이 가지는 위치가 중요하다고 매우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성인은 최초로 구약성경 히브리어와 신약성경 그리스어를, 그 당대의 사람들이 흔하게 사용한 대중적인 라틴어(Vulgata Latina)로 서기 382년에 번역을 해내신 분 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43] '가브리엘, 라파엘, 미카엘' 3대천사들의 이름에 담긴 영성은 어떤 것들일까요?

3대천사들 요즘 시대에 자주 회자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카.페.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SNS의 줄임말이며, '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를 줄인 말이라고 합니다. 유명인사들은 이 '카.페.트.'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리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제는 자신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다양하게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라고 하여서, '메신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한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말이 바로 이 '메세지'라는 단어입니다. 그 어원을 뒤져보면, 중세 라틴어의 'missaticum'이라는 용어가 어원이 됩니다. 이것은 원래 라틴어 missus, 즉, "sending, a throwing"이라는 뜻이되고, 이것은 그래서 "보냄, 던짐"이라는 뜻을 지니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용하는 미사(Missa)가 이 '미쑤스'로부터 기원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이 '미싸티쿰'으로부터 고대 프랑스어에서 'message'가 되어서, 이것이 '메세지'로 인식된 것입니다. 결국에는, 상대에거 보낸 것이라는 문자적 의미를 뜻하고, 맥락을 따져보면 어떤 매체나 사람을 지칭하는 '메신저'를 통해서 전달하게 되는 내용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보내는(던지는) 내용'과 '전하는 매체(사람)'이라는 관계가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처럼 인터넷 데이터를 이용해 전세계와 메시지 교환을 하는 시대가 아니었던 때, 특별히 메신저도 존재하지 않는 종교적인 세계와의 메시지 교환은 어떻게 가능했을 것일까요? 바로 여기에 천사들의 중요성이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천사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대표되는 3대천사들은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42] 세례명 '마태오' 혹은 '마티야'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일까요?

사도 마태오, 복음사가 "집 짓는 자들이 내버린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우리 눈에는 놀라운 일 야훼께서 하신 일이다."  (시편 118편 22~23, 공동번역성서) 모든 종교는 자기들의 가르침을 표방하는 경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슬람에서는 거룩한 쿠란, 그리스도교는 성경, 힌두교에는 바가바드 기타 등등 모든 종교는 그 근본교리의 근거가 되는 출전이 있고, 그것을 기록한 사람이나 공동체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슬람의 쿠란은 대예언자 무함마드의 언사(言辭)를 후대의 사람이 기록하게 하였는데, 이런 기록에 대한 인정 및 기록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인해서 현재의 시아와 수니파로 나뉘어졌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도 구약의 제2경전(집회서, 지혜서, 토빗, 유딧, 마카베오 상, 하)을 포함시키느냐 마느냐에 따라서 개신교와 다른 교파들로 구분됩니다. 그리고 아마도 다른 종교들도 이런 비슷한 상황을 겪어서 현재의 분파들이 존재하리라고 봅니다.  이렇게 다양한 종교들은 다양한 경전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 경전들의 해석의 다양성으로 인해서 많은 분파들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다만, 그리스도교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특이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기록한 네 가지 버전이 존재하고, 그 네 가지 버전 가운데에서도 3가지 버전(마태오, 마르코, 루카)은 서로의 내용이 상당히 흡사하다는 점입니다. 약간의 변화와 특징을 보유하고 있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는 점이 "우리 눈에는 놀라운 일'"이고 바로 "야훼께서 하신 일"입니다. 사람이 생각지도 못했던 측면을 주님께서는 놀랍게 만드시는 탁월함을 지니신 하느님이라는 점을 믿게 됩니다. 이런 것이 바로 신앙의 선물이고 하느님의 '선물'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알아보고자 하는 이 '마태오'는 12사도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이 3가지 버전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