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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묵상] '기름(oil)'의 아름다움

2016년 3월 21일 성주간 월요일

요한 12,1-11

우리가 살아가면서 아주 중요한 액체 세 가지를 꼽으라면 저는 이렇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물, 술 그리고 기름. 물은 잘 아시다시피 생명과 생활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액체입니다. 물이 없다면 우리는 생명도, 그리고 여러 가지 일상생활도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아주 중요하고 필수불가결한 액체입니다. 그래서 물은 '살아있게 만드는' 액체입니다. 술은 어떨까요? 술은 선호도에 따라서 필수적이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행사와 분위기,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매우 필요한 액체입니다. 심지어는 술이란 액체를 생성하는 과정에서 들이는 정성을 통해, 그것을 종교의식이나 조상공경지례(조상제사)를 지낼 때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액체입니다. 그래서 술은 '대화하게 만드는' 액체입니다. 그럼 기름은 어떠합니까? 특별히 석유는 오늘날 모든 산업과 문명의 출발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타 다양한 기름은 식용유, 윤활유 혹은 아로마 오일, 즉 향유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기름이란 그래서 '풍요롭게 만드는' 액체입니다. 

그러면 어느 액체가 가장 '아름다운' 액체일까요? 생각하시는 바에 따라서 '술'이라고 말할 분들도 계실 것이고, 또 '물'이라고 말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의견에는 바로 이 '기름'이 아름다운 액체라고 말할 것입니다. 왜 아름다운가? 그것은 고전적으로 말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에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고대철학에서부터 내려오는 '아름다움'이란, 바로 '균형의 아름다움'을 말합니다. 따라서 생각이든 말이든 행동 등등의 무엇이든지 '서로 균형을 이루었을 때' 그것을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왜 '기름'이 아름다운 액체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바대로' 실제로 '풍요롭고 풍성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석유가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엄청난 에너지가 실제로 그러하였고, 콩기름이나 해바라기 기름, 올리브유, 참기름 등이 가지는 다양한 맛들이 요리에서 제 몫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실제로 그러하였습니다. 게다가 아로마 오일이 마사지를 할 때에 사용하면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심지어는 치료효과까지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그런 경우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이 '생각'과 '현실'의 균형, 생각하고 믿었던 만큼이 진짜 현실로 드러나는 것을 우리가 직접 보았기 때문에 '아름답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풍요로움'이 '아름다움'과 연결되는 액체가 '기름(Oil)'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복음이 그 면모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로마 오일 가운데 복음에 나오는 나르드 향유란 어떤 기름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인터넷에서 검색해보았더니 해발 3천미터 이상의 고지대에서 자라는 식물이라고 하며, 6~7월에 꽃이 피고 10~12월에 그 식물의 뿌리로부터 향유를 추출해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나르드 향유는 휘발성이 강해서 옥합에 잘 보관하지 않으면 금방 향기가 증발해서 쓸모가 없어진다고 합니다. 게다가 나르드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 nalada에서 파생하여 “널리 퍼지는 향기”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나르드 향유는 1) 아주 흔하게 찾아보기 어려운 기름이고, 2) 아주 '널리 퍼지는 향기'를 갖는 기름이며, 3) 휘발성이 강해서 평소에 자주 쓰는 기름이 아니라 특별한 때에 옥합을 깨서 사용해야 하는 기름입니다.

게다가 복음에서 나오는 대로 이 나르드 향유의 가격이 삼백 데나리온이라고 유다 이스카리옷이 증언해줍니다. 이 삼백 데나리온이란 바로 1인 하루의 품삯이 1 데나리온이었던 사실을 고려한다면, 거의 1년치 연봉에 해당되는 금액입니다. 따라서 생각해보면 정말 엄청난 금액을 지니는 귀하고도 귀한 기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그 향유를 적셔서 자신의 죽었던 소중한 형제 라자로를 살려내신,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외아들, 왕이요 구세주이신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의 발등을 닦아 드렸습니다. 그분도 원래 '기름부음을 받으신 분'으로 '왕이 되신 분'이신데, 그런 분께 자신의 큰돈과 자신의 머리카락과 자신의 정성과 애정을 가득 담아, 실제로 예수님께 그런 자신을 보여드렸습니다.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바대로, 메시아에게 그대로 표현하고 행동하였기 때문에 마리아는 더욱 '아름다운, 균형있는' 믿음의 여인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시중을 들고 고생하는 마르타보다도 더 '아름다운' 여인으로 표현되었고, 주님께서는 그런 마리아를 우선 생각해주셨습니다. 이제 마리아는 '기름의 아름다움'을 통해서 '아름다운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바로 '기름부음을 받으신 이'에게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최대치를 실제로 행동해서 균형을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믿음이 아주 '풍성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유다 이스카리옷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고, 증오에 차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추한' 사람들이 되어버렸습니다.

교우 여러분, 이제 복음을 통해 '기름이 아름답다'는 믿음을 가져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동시에 '균형'이라는 가치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해 표현하려는 그 마음도 다시금 생각해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각자의 상황에 따라 문자 그대로 마리아처럼 예수님께 늘 표현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균형의 아름다움'이라는 차원은 누구든지 늘 생각하고 행동에 옮길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노력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성주간은 우리가 평소에 얼만큼 주님을 생각하였는지, 거기에 '균형의 아름다움'이 있었는지 아니면 자신들의 이익이나 이념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유다나 수석사제들과 같은 입장은 아니었는지 다시금 점검하고 다시금 강화하는 집중주간입니다. 우리 삶과 우리 믿음과 우리의 가치관에서, 나르드라는 말처럼 '널리 퍼지는 향기'가 있으며, 그것으로 '풍요롭게 하는지', 그래서 신앙생활이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는지 되돌아보며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님께 더욱 다가가도록 합시다.

나르드꽃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요한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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