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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묵상] '호산나, 그리고 반전'

2016년 3월 20일 주님 수난 성지주일

우리가 스포츠 경기를 관전할 때에, 가장 중요한 선수가 등장하거나 교체선수로 투입되었을 경우에 많은 환호와 기대를 담아서 그 선수의 이름이나 팀명을 연호합니다. 단체로 그 선수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그러다가 그 선수가 아주 잘 하면 더없는 찬사를 보냅니다. 그러나 그 선수의 불찰로 인해서 미스가 생겨 경기에 패하게 되면 그 선수는 거의 매장을 당하게 됩니다. 각종 언론매체에서 그 사람을 비판하고, 그런 선수를 기용한 감독의 용병술에 대해서도 단단히 비판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승리라는 목표를 향해 전진합니다. 

신앙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일면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예수 그리스도를 주장이라고 하고, 그분을 이 세상이라는 필드에 기용하신 대표감독이 성부 아버지시라면, 우리들은 그 주장의 등장에 연호하거나 혹은 비난을 쏟아붓는 그런 관객들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고 환호하며 외칩니다. '호산나~' 그런데 너무나도 냉혹한 것이, 우리에게 좋지 않은 결과들이 생길 때에는 바로 그 주장선수의 '플레이'가 너무 좋지 않다는 비평을 합니다. 그러면서 별로 그 선수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갑니다. 그 '주장'과 '감독'은 자신들의 소중함을 알아주지 못하는 관객들로 인해 슬픔에 잠기게 됩니다. 그러나 묵묵히 참아냅니다.

이 '호산나'라는 연호, 이 뜻은 무엇일까요? 히브리어와 유사한 '아람어'라는 언어가 있습니다.거의 히브리어와 같은 어근을 사용하는데,  Hoshea; Joshua, “salvation”와 같은 가족에 속하는 hôshia-nā’(호쉬아-나)로부터 파생되었습니다. 이 동사 자체가 바로 To save, to help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 말 자체로서 바로 '도와주소서, 구해주소서!'라는 호소이자 간접명령문입니다. 그 대상이 바로 예루살렘으로 십자가형을 당하려 입성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어지는 호칭입니다. 

이것은 주장선수에게 보내는 환호와 기대의 함성소리와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곧 반전을 일으킵니다. 그것은 저주와 멸시의 분노로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주장선수를, 그리고 그를 기용한 감독을 이제 '십자가형'으로 처단하고, 매장하는 행위로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장'과 '감독'은 자신들의 가치를 알아주지 못하는 냉정함으로 인해 깊은 슬픔에 잠기게 되며 한동안 자숙과 침묵의 시기를 갖습니다. 

다만, 인간적인 선수와는 달리 하느님이라는 신적 능력을 이미 보유한 선수이시기에 '부활'이라는 카드를 내밀면서 다시 재기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언제나 완전한 '주장선수'로 관객인 신자들과 감독인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믿음과 사랑과 희망의 대상이 되어주십니다. 그리고 영원히 함께 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을 우리는 다시 한번 숙고해보기 위해,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는 어떤 관객의 모습을 취했는지, 그리고 그런 선수와 감독의 소중함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래서 이 성주간의 의미가 더 깊은 것입니다. 함께 하는 우리 모든 교우들께서 어떤 형태의 '관객'이 되시는지, '호산나'라고 환호하다가 반전을 일으키는 '우리 자신'이 아닌지 우리도 자문해봐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높은 데서 호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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