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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묵상] 노자의 '水'와 요르단강의 '水', 그리고 예수의 '手'

2016년 1월 10일 주님세례축일



오늘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물'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날입니다. 동양철학에서 자연물인 '水'를 의인화하여 그 덕을 칭송하는 학파가 바로 도가사상입니다. 도가사상의 대표주자인 노자(老子)는 '물'과 관련된 격언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되는 것이 바로 도덕경 8장에 나타난 '상선약수' (上善若水)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을 지니는 것일까요?

'상선'이라고 함은 가장 큰 선(善)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따라야할 가장 바람직한 덕목을 지칭할 것입니다. 이런 가장 바람직한 선이 바로 '물'과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물은 어떤 덕목을 지닌 사물로 표현될까요? 여기에는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에 겸손하고, 항상 주어진 공간 속에 완전히 채우기 때문에 충만하고, 주어진 그릇에 맞게 채워지면서도 그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는 유연하면서도 고매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도 그와 같아야하지 않겠냐고 생각하게 만드는 격언입니다.

그럼 여기에는 요르단강의 '水'가 있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고, 하느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 건너간 그 요르단강,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지니는 정체성을 지시해주는 그런 요르단강, 생식기의 표피를 절단하는 '할례'가 아니라, 하느님과의 약속의 상징물이 된 요르단 '강물'로 사람들의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축복하는 '세례'를 요한 세례자가 베풀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요한 세례자가 이제는 자신보다 더 큰 분이 오셔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고 합니다. 단순히 요르단강물로 하느님과의 약속을 갱신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세례를 받는 영혼에게 성령과 불(열정)을 심어주시겠다고, 강화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하느님의 아드님, 곧 상선(上善)이신 예수님께서 요한 세례자의 손 아래 놓이십니다. 이를테면 '상선하수' (上善下手)의 상황에 놓이십니다. 마치 '상선약수'의 덕목처럼 주님의 인간성이 묘사됩니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예수님의 '손' (手)에 주목하게 됩니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시며, 요한 세례자의 손 아래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권능의 손 아래에서, 요르단 강물 속에서, 겸손하고, 충만하고, 유연하면서도 고매한 인성과 신성을 간직한 채로 세례라는 약속의 예식을 받으십니다. 그러면서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저의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즐겨 이룹니다.' (시편 40,9)

그리고 그 손으로 많은 것들을 이루실 것입니다. 세례와 치유, 구마와 해방, 성찬과 수난, 부활.

주님 세례축일을 통해 우리가 주목할 것은, 처음으로는 물이라는 자연물이 지니는 본성적 의미일 것이고, 두번째는 요르단강물이 지니는 의미일 것이며, 최종적으로는 그분의 두 '손'으로 시선이 모일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면, 우리에게는 끊임없이 기도할 수 있는 그런 열정이 늘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한 인간으로서 충실하게 기도하고 순명하였다는 점이 무엇보다 의미깊은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양손에서부터 흘린 피로 인하여 혈세(血洗)를 이루셨기에 더욱 뜻깊습니다.  그런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계획에 처음부터 순응하셨기 때문에, 두 손을 모으고 겸손되이 기도하시면서 순응하시기 시작하셨기에 하늘에서부터 이런 말씀이 울려퍼질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상대의 '하수'가 되어서 '고수'가 되는 역설을 실현하려고 우리의 두 손을 모으고 있는지 살펴야하지 않을까요? 그럴 때에 우리도 이런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루카 3,22)

댓글

  1. 신부님 강론 잘 읽어봤습니다. 동양사상과 신부님이 배우고 계신부분을 잘 엮어가시는 모습과 강론말씀이 제안에 울림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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