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오늘의 복음묵상] 믿는다는 것은 '만약(as if)'이 아니라 '이미(already)', 산다는 것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

2016년 1월 11일 월요일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20세기의 유명한 발명가인 에디슨의 달걀부화 이야기입니다. 에디슨은 암탉이 알을 품는 것처럼 자신도 품는다면 같은 병아리가 태어날 것이라고 믿고 행동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실험정신과 도전의식이 백열등 발명 등의 기록적인 역사를 창조할 수 있었습니다.

21세기는 스티븐 잡스의 이야기로 유명합니다. 그는 서체학을 전공하는 학생이었고, 애플에 입사해서 남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것들을 새롭게 창조해냅니다. 일체형 매킨토시 컴퓨터, 아이폰과 아이패드, 맥북 등등의 제품은 지금까지도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런 혁신의 아이콘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은 디지털 과학의 시대로 명명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저와 같은 기록적인 역사를 창조해낸 인물들이 가지는 '조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리더쉽 서적들이 많이 저술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조건적 사고를 가진다면, 유사한 기적을 창조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관점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위의 두 거장은 자신의 신념에 바탕을 항상 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이미'라는 부사에 늘 중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과학적 사고나 논리적 사고는 항상 '만약'이라는 단어부터 앞세우게 됩니다. 왜냐하면 당연한 것이 아직 현실로 나타나지 않은 것들을 '가설'로 삼아서 시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옳을 수도 있고 그를 수도 있는 그런 현실을 '설계'하기 위해 사고를 진행합니다. 그러나 '이미'라는 믿음의 차원은 그것을 '이미' 뛰어넘게 되어있습니다. 적어도 믿는 이들의 마음 속에는 그 현실은 '이미' 존재하는 세계요 구상된 현재입니다.

오늘의 마르코 복음에서도, 복음 저자는 이와 동일한 관점을 피력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야기하시길, "이미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였다." (마르 1,15)는 서술을 합니다. 이 때에 때가 차다는 동사(πεπλήρωται, 직설법 완료형 수동태 3인칭 단수, 동사 원형 '가득 차다')와 선포하였다는 동사(ἤγγικεν, 직설법 완료형 능동태 3인칭 단수, 동사 원형 '복음을 선포하다') 모두 완료형을 사용합니다.  그리스어에서 사용되는 완료형이란, '이미' 특정 사건이 종결되었지만 '아직' 그 효과가 여태까지 지속되고 있는 동작을 표현할 때에 사용됩니다. 이런 연장선 상에서 영어의 현재 혹은 과거완료도 동일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렇게 '이미' 이뤄졌으나 '아직' 유효한 것을 두고 완료형의 동사를 사용합니다.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복음말씀이라는 것이 '만약'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한 이라면, 그 사람에게 '신앙'이라는 믿음의 이야기는 '실험'의 이야기입니다. 모두 경험해보고 의심해봐야 하고, 또한 앞으로 그것이 유효한 진리일 수도, 한낱 거짓일 수도 있는 이야기입니다. 반대로, 그것을 '이미'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의 논리에 익숙하다면, 그 사람에게 '신앙'이라는 믿음의 이야기는 '현실'의 이야기입니다. 존재하는 이야기이고, 유효한 이야기이며, 복잡다양한 사고가 자유롭고 단순해지는 이야기이며, 무한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외아드님 주 예수 그리스도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위대하다고 믿고 공경하는 위인들도 그들만의 신념이 있고 그에 따라 '이미' 존재하는 세계를 구현하려고 노력하였는데, 神이요 사람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이 '이미' 이뤄졌다고, '이미' 참되다고 '믿는다'면, 그 얼마나 효과가 강력하게 지속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믿는다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기술이 이미 완성된다면, 오직 퇴보 만이 앞으로 존재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이 이미 완벽하게 완성되었다면, 우리에게는 놀이만이 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그 정반대입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기술도, 완성되지 않은 인생도 계속해서 최초에 믿었던 '믿음'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전진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자연스럽고 투명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이미' 믿는다면 우리에게는 '아직' 자유로울 권리가 있습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31-32)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11] 세례명 '글라라'에는 어떤 뜻이 담겨져 있을까요?

아씨시 성녀 글라라 대성당 지하에 모셔진 글라라 성녀 유해 앞에서 프란치스코란 이름의 영성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 안에는 '자유'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프란치스코와 항상 함께 등장하는 이름이 바로 '글라라'입니다. 아씨시의 성녀 글라라, 성 글라라 봉쇄수도원의 창립자, 전세계에서 가장 큰 여성봉쇄수도원을 지칭하는 성 글라라 수도원의 최초의 영적 어머니, 이 글라라란 이름의 뜻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란치스코도 그러했듯이, 글라라라는 이름도 라틴어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12~13세기 중세의 인물이었기 때문에, 구약의 히브리어나 신약의 그리스어가 아닌 대중적인 라틴어로부터 이름을 따왔던 것입니다. 라틴어로 보면, 이 글라라는 철자가 Clara입니다. 이는 남성형용사 Clarus의 여성형입니다. 그래서 Clara입니다. 다시 이 형용사의 뜻을 살펴보면, 'transparent, clear"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라틴어 Clara가 스페인어로 와서는 그대로 Clara라고 표기합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이 계란의 흰자 부분을 두고 'clara'라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투명함이 백색으로도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태리어로는 Chiara (끼아라), 프랑스어로는 Clare (끌레르), 영어로 Clare (클레어)로 표기하고 발음합니다. 독일어로는 Klara라고 하고, 참고로 독일어에서는 '설명'이라는 명사가 Erklärung이라고 하여서, 상대를 두고 명료하게 만드는 것을 두고 '설명'이라고 정의하는 독일어식 뉘앙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현대의 국문표준법상, 우리나라의 첫 음절은 ㅋ, ㅌ, ㅍ 등은 그보다 약한 소리인 ㄱ, ㄷ, ㅂ로 표기하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클라라'가 되겠지만, 한국표준법에 따라서 '글라라'가 됩니다. 같은 경우로 Petrus,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29] 세례명 '율리오/율리아' 혹은 '율리안나 (율리아나)'에는 어떤 뜻이 숨어있는 것일까요?

루카복음 20장 25절의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루카복음 20장 25절 말씀 형상화 "카이사라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이것은 바칠 것이 있다면 그 원래의 주인에게 '되돌려드리는' 정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당시 세금논쟁을 예수님과 벌이고자 하였던 로마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사실 그 카이사르의 것도 주님의 것이기는 하지만, 카이사르가 가져야할 몫을 부정하지는 않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의무에 대해 긍정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신앙적으로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도로 바치는 마음가짐이 요구된다는 점을 부각시킬 때에 많이 회자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이름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로마 공화정 시대에 실존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입니다. 이 '카이사르'라는 말은 로마 시대의 통치자, 황제를 지칭하는 호칭이었기에, 그 이름을 지닌 사람에게는 막강한 권력이 주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바로 이 '율리우스(Julius)'라는 라틴어로 된 남성의 이름입니다. 원래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신은 바로 제우스 (Zeus) 신입니다. 그리고 로마신화로 넘어오면, 그 신은 바로 주피터 신(Jupiter)이 됩니다. 그래서 '율리우스(Julius)'라는 이름은 바로 이 신중의 신, 왕중의 왕인 주피터 신에게 자신을 봉헌한, 자신의 모든 것을 도로 바친 남성을 두고 '율리우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여성의 이름을 바로 율리안나(율리아나, 쥴리엔, Julien)으로 표기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의 최고신인 '주피터' 신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도로 바친 사람으로서, 로마공화정의 최고의 통치자로 역할을 하였던 사람입니다. 또한 반대로 '주피터' 신이 그를 통해 모든 권능을 부여한 사람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38] 세례명 '소피아' (Sophia)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을까요?

프랑스 여배우 소피 마르소 제가 어린 시절에 문방구에 가서 물건을 살 때면, 항상 저보다 더 나이가 많았던 형들이 그 문방구에서 옆의 소피 마르소의 사진으로 코팅이 된 책받침을 많이 사가는 것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만큼 미모가 출중하고 많은 이들의 여신으로 추앙받을 만하였기 때문이겠지요. 옆의 사진이 근래의 사진이라고 하며, 어린 시절의 전설의 사진들을 검색하여 보면, 지금 여느 아이돌을 능가할 정도의 미모를 가진 여인으로 나타납니다. 정말로 대단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배우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이름을 프랑스어로 표기하면 Sophie Marceau가 됩니다. 프랑스어식 발음으로 '소퓌 마~르소'가 되겠구요. 특별히 그녀의 이름인 이 'Sophie'는 서양에서는 아주 많은 이름이고, 이것은 우리가 살펴볼 '소피아'의 프랑스어식 변형이라는 점을 알아두면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이 이름은, 영어로는 Sophie라고 해서 불어식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고, 그리스어나 독일어에서는 Sophia라고 하며, 그리고 러시아어 등의 슬라브어 계열에서는 Sofia 혹은 Sonia(소냐)라고 합니다. 그래서 슬라브계열의 여성 이름들 가운데 소냐가 많은 경우가 있는데, 이 'Sonia(Sonya)', 즉 '소냐'라는 이름은 모두가 Sophia, 즉 소피아라는 이름의 변형이라는 점을 알아두는 것도 흥미로울 것입니다. 그럼 이 소피아 혹은 소냐라는 이름이 지니는 뜻은 무엇일까요? 원래 이 이름은 그리스에서 기원한 것입니다.  Σοφια (Greek)라고 하는 여성명사에서 기원이 되었는데, '소피아'라고 읽고 그 뜻은 '지혜' (智慧,wisdom)입니다. 원래 이 소피아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철학에서 자주 등장하던 단어입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파르메니데스 등 고대 그리스철학자들이 그렇게 갈구하던 단어이고, 서로 저마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