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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88] 세례명 '블란디나Blandina'에 담긴 어원적 의미와 영성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흔히 요리를 맛볼 때에 ‘밍밍하다’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그것은 소금이나 후추 등 기본적인 밑간이 전혀 되지 않은 음식을 두고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워낙 각자가 각양각색의 입맛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밍밍한 맛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담백하고 맛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은 다 다르고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힘들기도 하고 더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며 더 풍요롭기도 합니다. 그것은 결국 각자가 가지고 있는 관점이 얼마나 긍정적인지 얼마나 부정적인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볼 성녀의 이름은 ‘블란디나’(Blandina)입니다. 이 이름의 어원은 본디 라틴어 블란두스(Blandus) 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블란두스는 사전에 의하면, 매혹적인(Charming), 즐겁게 하는(Pleasant), 친절한(Gentle), 매력적인(Attractive), 신비스러운 매력을 가진(Alluring) 등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블란두스의 여성형 변화인 블란디나이기에, 블란디나의 이름의 뜻은 어원적으로, ‘신비스러운 매력을 가지고 있으며 친절하게 우리를 기쁘게 하는 여인’ 이라는 뜻을 지니게 됩니다.  성녀의 생애를 잠시 들여다 보도록 합시다. 성녀 블란디나는 177년경 프랑스 리옹에서 있었던 박해시절에 숨진 순교자 가운데 한 분입니다. 당시 주교였던 성 폰시아노와 함께 순교한 인물입니다. 본디 노예 출신이었으나, 여주인이 신자였기에 신앙을 받아들이고 여주인과 함께 감옥에 붙잡혀 왔습니다.  그녀에게 온갖 고문이 떨어지고 배교할 것을 강요당했습니다. 게다가 이 시절에 그리스도인에게 가해진 박해의 수준은 상상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24시간 내내 고문했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고문을 참지 못한 이들은 배교를 하기도 했지만 끝까지 서로를 격려하며 박해를 참아 견딘 이들도 많았습니다. 맹수의 공격으로 사자의 먹잇감이 되기도 하였으며, 온갖 모욕을 견뎌야 하였습니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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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87] 세례명 '안티모Anthimus'에 담긴 어원적 의미와 영성은 무엇인가요?

  누구나 자기 자신만의 체취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주로 땀냄새이며, 겨드랑이의 액취, 입냄새인 구취, 발냄새, 머리카락 냄새, 살내음 등등 다양하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주로 자기 자신의 고유한 체취이기에 자신은 잘 모르며, 타인에게는 큰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바로 상당히 체취가 독한 편의 동물이라고 합니다만, 유독 한국인들은 전세계에서 독특한 유전자 형질을 보유한 덕에 체취가 거의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반면 전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체취가 나기 때문에 그렇기에 향수가 발달되었고 인공적인 방향제로 온갖 악취를 덮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것은 어떤 정도의 향기일까요? 꽃들 가운데 향기가 강한 꽃들이 바로 장미, 프리지아, 수국 등이 있습니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이런 종류의 꽃들이 단 몇 송이들만 있어도 전체 공간을 가득 채울 정도로 향이 짙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향기’는 이런 꽃들을 수천 수만송이를 채우고도 그 이상의 짙고 강렬한 향기가 아닐까요? 게다가 그 ‘향기’는 꽃의 본성처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어린양 당신 본성인 자비와 용서의 짙은 향기가 아니겠습니까? 또한 그런 당신 본성을 십자가의 길을 통해 닮은 제자들, 아버지 하느님의 자녀들일수록 그 향기가 엄청나게 짙게 배어나지 않을까요?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거룩함이 아니겠습니까?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우라고 하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 그 향기가 엄청나게 짙게 피어오르지 않을까, 나도 그 향기를 내는 한 송이의 꽃처럼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다소 생소하지만 주위에 종종 있는 세례명인 안티모(Anthimus)라는 이름이 바로 이런 소망을 담고 있는 이름입니다. 로마 박해시절의 사제이셨던 순교자 안티모 성인은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도록 이교도들을 개종시키셨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성인께서는 체포되어 티베르(Tiber) 강에 던져지는 형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86] 세례명 '살로메Salome'에 담긴 어원적 의미와 영성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매번 미사 전례에서 평화의 인사를 합니다. 이는 초대 교회때부터 시작된 풍습이었고, 서로가 성만찬에 참여하여 빵을 함께 나누기 전에 하던 풍습이었습니다. 그런 평화의 인사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기존에 성직자들끼리만 나누던 인사를 모든 하느님의 백성들과 나누는 것으로 확대 시키면서 지금처럼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과 더불어, 이웃과 더불어 평화의 백성이 되고자, 한 백성이 되고자 하는 소망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어로 “샬롬”(Shalom), 곧 평화를 의미하는 이 단어를 서로 인사할 때 많이 쓰고 있습니다. 서로 샬롬, 샬롬 그렇게 인사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주 예수님처럼 성부의 사랑스러운 자녀가 되는 것, 그 사랑에 심취하는 것이 우리 신앙과 삶의 궁극적 목적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평화는 그 사랑을 위해 아무 것도 바라거나 원하거나 고집하지 않는 마음의 가난이 있을 때에만 진정한 평화를 맛볼 수 있습니다. 또는 너무나 극진한 주님의 사랑을 경험할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표현은 오직 주님만을 섬기고 다른 것은 쳐다보지 않고서 주님의 나라, 평화의 나라 확장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그 일념 뿐일 것입니다. 오늘 만나는 이 살로메 성녀는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정확히 그 신원을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전통적으로는 마르코와 마태오 복음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마르 16,1에 이렇게 증언합니다. “안식일이 지나자,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 는 무덤에 가서 예수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그래서 살로메는 주님의 빈 무덤을 처음 목격한 ‘세 명의 거룩한 마리아’ 중 한 명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충실히 따른 여성 제자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녀는 대 야고보 사도와 성 요한 복음사가의 어머니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주님과 가까이 지냈고, 주님 부활의 목격증인이었습니다. 평화의 주님과 매우 친밀했던 것입니다. 그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85] 세례명 '콜레타(Coleta)'에 담긴 어원적 의미와 영성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름인 니콜라스, 니콜라오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이미 다룬 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만날 성녀 콜레타 속에 숨어 있는 의미는 이 니콜라오라는 이름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이 니콜라오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니콜라스(Νικόλαος)는 그 뜻이 한 마디로 ‘백성의 승리’(Victory of the people)입니다. 그리고 이 이름의 축약형이 바로 니콜레트, 콜레타이기에, 그녀의 이름 속에서 우리는 그녀를 통한 하느님 겸손의 승리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성녀의 일대기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Picardie) 지방 코르비에서 1381년 1월 13일에 태어난 성녀의 본명은 본디 니콜레트 부아레(Nicolette Boilet)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수호성인인 성 니콜라오(12월 6일)에게 기도를 해서 얻은 딸이기 때문에 니콜라우스의 여성축약형으로 니콜레트라고 이름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였던 로베르 부알레(Robert Boilet)는 그 지역 베네딕토회 수도원에서 목공수였기에, 그녀는 자연스럽게 어릴 적부터 수도승생활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녀도 어린 시절부터 수도자로서의 관심과 부르심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나이 17세에 갑자기 양친을 잃게 되었고, 그래서 그녀는 그 베네딕토회 수도원 원장의 도움으로 잠시 다른 수녀원에 머물다가, 재속 프란치스코회원(3회원)이 되었고 1402년 9월 17일 성 프란치스코 오상축일부터는 베네딕토회 수도원 인근에 은둔소룰 짓고 은수자로서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21살부터 그녀는 홀로 은수생활을 하였는데, 어느날 코르비의 자신의 은둔소에서 성 프란치스코의 환시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성 프란치스코는 그녀에게 환시 중에서 클라라회가 초창기 정신에 따라 살도록 개혁하라는 메시지를 성 프란치스코가 그녀에게 주었던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 부르심에 응답하고자 자신의 은둔소를 떠났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3세는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84] 세례명 '메토디오(Methodius)'에 담긴 어원적 의미와 영성은 무엇일까요?

영국 성공회에서 분파되어 나온 개신교회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감리교회( 監理敎會, Methodist Church)입니 다. 성경을 중심으로 이성과 자유의지를 동시에 중요하게 보았던 영국 성공회 성직자 존 웨슬리(John Wesley)가 영국이 신앙적 침체기에 빠져 있을 당시, 성경을 연구하면서 병자와 가난한 이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기존 성공회가 등한시하였던 성경과 성령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금 고찰하면서, 진리를 잘 비추는 교회라고 하여 감리교회라고 하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신앙생활에서는 간과했던 부분을 새로운 방법으로 채택하였다고 하여, 방법론자의 교회라고 하여 메토디스트(Methodist) 교회라고 하지 않았나 상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신앙은 항상 본질과 형식의 딜레마가 상존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편향되기만 한다면 항상 길이 어긋날 수 있으며, 그때마다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는 주님의 메신저가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교회를 통치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오늘 만나는 성 메토디오 대주교도 슬라브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한 인물이었습니다. 본디 그리스어로 From μετ᾽ (메타 met᾽ , 관심, 추구“concerning pursuit”) +‎ ὁδός(호도스 hodós , 길“road, way”),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따라야 할 길”(the way to follow)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메토디오 성인의 이름은 그 성인의 노선과 삶이 주님이 주신 모범의 길, 우리가 “따라야 할 길”이 되는 것 입니다. 과연 이 성인은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요? 그는 그리스 테살로니카에서 형인 성 치릴로와 함께 고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형과 함께 863년 모라비아인(체코 공화국 내의 모라비아 지역에서 온 서부 슬라브 민족 그룹)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라는 사명을 받고 그곳으로 파견되었습니다. 비록 그들을 개종시키지는 못했지만, 그 두 형제의 슬라브어 실력이 대단하였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83] 세례명 '라이문도(Raymond)'에 담긴 어원적 의미와 영성은 무엇일까요?

독일의 시성(詩聖)이라고 불리우는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이런 격언을 남겼습니다. “인간을 벌할 수도 사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으면 안된다.” 이는 법(law)과 관련한 격언으로, 법이 처벌만을 위한 것도, 사면만을 위한 것도 아니라, 오직 인간존중의 따뜻하고 열린 시선으로 항시 접근해야 한다는 진리를 망각하지 않게 해 주는 격언입니다. 그러니 처벌과 혐오가 법의 궁극적 목적이 아니라는 점이지요. 그런 맥락의 연장선에서 교회 내에 존재하는 교회법도 같은 신학과 영성을 지닙니다. 교회법은 교회 구성원들의 처벌만을 위한 것도, 예방적인 차원이나 교정적인 차원만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법은 목적률(Teleological Principle), 곧 본디 창조되고 제정된 본질에 충실하도록 계도하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법은 곧 사목적이며, 사목적인 것은 교회법과 상충되지 않아야 마땅한 것입니다. 요즘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깝고 대단히 아쉬운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법 학자의 수호성인이신 스페인 페냐포르트(Penafort)의 성 라이문도 사제께서는 다시금 주목해야 하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이분이 교회법의 기초를 세우신 교회법 대학자 성인사제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디 도미니코회(설교자회)의 세 번째 총장으로 재임하셨고, 수많은 저서를 지으셨음에도 항시 겸손한 모습을 간직하고 계셨습니다. 이 라이문도 성인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우리가 잘 아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 성 보나벤투라, 성 대 알베르토 등이십니다. 라이문도 성인께서 교회법의 대가로서 기초를 닦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의 이름 속에 담겨진 영성과 삶을 보면서 지금 이 시대의 혼란을 다시금 분별할 절대적 필요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분의 이름 라이문도는 영어로는 ‘Raymond(레이몬드)’입니다. 고대 게르만어로는 ‘Raginmund(라긴문트)’라고 했으면, 이태리어로는 ‘

['이름' 속에 '영성'이 있다 82] 세례명 '실베스텔(Silvester/Sylvester)'의 어원적 의미와 영성은?

성 실베스텔 1세 교황   미국의 유명한 배우 가운데 한명이 바로 ‘실베스터 스탤론(Sylvester Stallone)’입니다. 근육질에 선이 굵은 외모를 자랑하며 할리우드 대표적 배우로 영화 록키와 람보를 우리들에게 각인시킨 남자 배우입니다. 그의 부모는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온 이탈리아계 미국인입니다. 그의 부모는 매우 가난해서 실베스터를 병원에서 낳을 수 없었습니다. 대신 공공 의료시설에서 낳았는데, 실베스터의 분만 담당 의사가 실수로 그만 그의 왼쪽 눈밑의 신경을 손상시키는 의료사고를 당했습니다. 그것이 그에게는 평생 페널티가 될 수 있었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힘껏 노력해서 할리우드 대표 배우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실베스텔 1세 성인 교황도 그런 척박하기 그지없던 환경에서 피선된 첫 교황이었습니다. 313년 콘스탄티노플 대제가 밀라노칙령을 통해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를 종결시키고, 드디어 고대하던 국교로 그리스도교를 인정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의 자유가 정식으로 허용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주님만이 피난처가 되신다는 믿음 하에 온갖 모진 핍박과 박해를 견뎌오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기반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이 분이 박해 이후 피선된 첫 교황님이며, 그분의 이름이 ‘실베스텔(Silvester/Sylvester)’이라는 점이 이목을 끕니다.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도, 성인 교황 실베스텔 1세의 이름에 공통적으로 담긴 이 이름의 어원적, 영성적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본디 라틴어로 실바(Silva/Sylva)는 그 뜻이 영어로 글자 그대로는 ‘Wood, forest, trees, park, garden’를 뜻합니다. 곧, 나무, 수풀이나 공원이나 정원을 의미한답니다. 비유적으로는 ‘abundance, heap, abundant material’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비유적으로는 풍성함, 부요함, 더미를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공통적으로 무수한 풍요를 말하며 재목(材木)을 말